목록뉴필로소퍼 (14)
모험러의 책방
「광고 회사에 근무 중인 내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대기업이 광고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대중 앞에 자사의 제품을 당당히 선보임으로써, 이 물건을 원한다는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대중에게 상품을 파는 사람들(생산자, 판매자, 광고 모델)은 그 물건이 광고에서 떠드는 것만큼 대단하거나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살 이하의 지능을 갖고 있지 않은 한, 시청자들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광고를 만들고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추론한다. 그렇게 물건을 욕망하고 그 욕망을 안심시키는 과정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된다. 산다는 것은 결국 소비한다는 것이다.」 - 톰 챗필드. 광고에 대하여. 뉴필로소퍼 2호.
「수집욕의 근원은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 수집욕은 자신의 컬렉션이 왠지 '불완전'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것들'을 모조리 '잡고'나면 결국 불만과 무관심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게다가 '디드로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 말은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쓴 에세이에서 유래했다. 그는 그 글에서 침실 용품 하나를 새로 들이자 기존에 소유하고 있던 모든 가구가 볼품없어 보인 까닭에 전부 바꿔야 했다는 상황을 설명했다. 장난감 상자에 더 많은 장난감을 채워 넣으면 대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난감은 매력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가진 물건들을 즐길 시간도 없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비문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
『무소유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를 쓴 라훌라 스님은 붓다가 사용한 팔리어 단어를 짚어 보며 깊은 뜻을 길어 낸다. 팔리어 경전은 붓다의 말씀을 가장 생생하고 보존하고 있지만 번역 과정에서 정확한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고 그는 아쉬워한다. 예를 들어 그는 우리가 '고(괴로움)'라고 번역하는 dukka의 의미가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dukka는 단순히 '괴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 때문에 생겨나는 괴로움'을 뜻한다. 이 '괴로움'은 출가 제자들의 수행에 필요한 개념이었을 뿐, 일반 신도들을 위한 가르침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붓다는 중생들에게 성공하고 부자가 되라고 가르쳤다. ... "꿀벌들이 꽃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꿀을 모으듯이, 남을 착취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인데, "돈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돈 문제가 아닌 일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정말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음식을 마련하는 일을 해결하는 데는 돈이 도움이 되지만, 사랑이나 자존감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실제 돈의 용도가 아닌 곳에 돈을 쓸 뿐, 아무런 효과도 없다. 부처의 가르침도 생각해 볼 만하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전부였다. 요즘은 누군가 명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이내 기업들은 베개, 명상용 테이프, 명상용 바지, 명상용 향 등을 구입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 뉴필로소퍼 2호, "물질주의적 삶에 대하여", 팀 캐서.
「훌륭한 사유의 과정일수록 어둠 속에 감추어 두는 대신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당당히 공개해야 한다. 애초에 '궁극적이고 완결된 진리'를 찾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래된 교리문답서나 유명한 격언의 구절을 인용하면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이용하면 제대로 규정되지도 증명되지도 않은 불완전한 진리를, 심지어 때로는 정상적인 사유의 방향과 정 반대되는 진리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한 번 이러한 모순을 느끼고 당황하기 시작하면 사유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이 내세운 철학이 무조건 옳으며 결론은 이미 나와 있으니 다른 주장은 모두 '궤변'에 불과하다는 아집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는 마치 철학에 무지한 자들이 모든 철학적 사유를 뭉뚱그려 '비현실적인 몽..
「미덕 과시라는 구체적인 용어가 처음 쓰인 것은 진화심리학자 조지프 헨리히가 쓴 논문으로 추측된다. 헨리히는 "진화와 인간 행동"이라는 논문에서 종교적 독실함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쓸모없어 보이지만 공동체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성인이나 순교자는 희생을 통해 자신은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신념에 대한 신뢰성을 높인다. 따라서 개념의 초점은 언행의 진실에서 언행의 사회적 기능으로 이동한다. 성 프란체스코가 실제로 천사를 만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범을 통해 기독교인을 결집시킨 신성한 고통이라는 유산이다. 이러한 생각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니체는 언어를 "군중 신호"라고 표현했다. 그는 "즐거운 지식"(The Gay Science)에서 ..
「기기가 유도한 불안의 시대에 나는 저명한 포스트 휴머니즘 학자 N. 캐서린 헤일스(N. Katherine Hayles)가 한 말을 자주 곱씹는다. "내가 꿈꾸는 포스트 휴머니즘은, 정보 기술이 한계를 모르는 힘과 육신이 없는 불멸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고도 성공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유한성을 인간의 조건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며, 인간의 삶이 엄청나게 복잡한 물질세계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으며, 생존을 유지하고자 그 세계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 의미를 풍기는 이런 세계관이야말로 '인간에서 인간으로'를 가장 잘 표현한다.」 - 질리언 테르지스, 가상 인물과의 사랑, 뉴필로소퍼1
「진실은 거짓말에는 대항할 수 있지만 개소리를 만나면 탱크를 공격하는 종이 화살 같은 꼴이 된다. 프랭프퍼트에 따르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의 편도 아니고 거짓의 편도 아니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그의 말이 현실을 올바르게 묘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 목적에 맞도록 그 소재들을 선택하거나 가공해 낼 뿐이다." 2005년 처음 발표된 이 글은(『개소리에 대하여』) 가짜 뉴스로 불리게 된 현상의 핵심, 즉 감정적 영향이 이야기를 판단하는 최고의 시험일뿐 아니라 유일하게 중요한 척도라는 믿음을 간파한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밈의 공유에 매우 호의적인 반면, '잠깐!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라는 신중한 자세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설득의 달인들이 우리를 조정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언제, 어떤 이야기에 웃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농담이나 코미디, 유머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실제로 살펴보면 평범한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웃는다. 그냥 다른 사람이 함께 있기만 해도 웃을 준비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웃을 확률이 30배 높아진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웃음은 사회적 환경에서 존재하는 행위다. 혼자 있어도 웃을 일이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것은 매우 오래전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 사람들은 그저 서로를 알고 있고 같은 집단의 일원임을 보여주기 위해 웃는 것이다. 웃음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인 유대를 맺고 유지하기에 매우 효과적이고 때로는 매우 일시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이 모든 연구를 수..
「이미지 마케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실재 세계에 대한 무관심은 급격히 커진다. 실재 세계는 마침내 기능을 상실한다. 허상과 허구의 집합. 우리는 플라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와 멀지 않다.」
「소위 '정보 과잉' 문제에서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진짜 원인은 우리와 소통하려는 시도가 너무 많아서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아우성치는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소통 시도들이 버겁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주의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의력은 하루 종일 착취당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희소한 자원을 발굴하는 사람들에게 큰 보상을 주었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그 자원이 금이나 석탄이 아니라 우리의 주의력이고, 채굴 장소가 광산이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일 뿐이다. 철학자 매튜 크로포드는 2015년 "당신의 머리를 뛰어넘는 세계"(The World Beyond Your Head)에서 인간의 '주의력'을 은행에 저축된 현금과 같..
「단정 짓지 않으려는 의지, 모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려는 의지는, 본질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분열된 아테네를 돌아다니며 옹호했던 모든 것의 반복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린 애제자에게 물었다. "우리가 행함에 있어 저지르는 오류가 모르면서도 안다고 여기는 이런 무지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는가?" 누군가의 확신을 다시 생각해 보라. 빠르고 손쉬운 지레짐작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끝없이 묻고 또 물어보라.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핵심 가르침이다. 반대 관점을 세밀히 살피는 까닭은 반대 의견을 짓밟거나 묵과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적이라 부를 만한 무엇, 바로 다른 가능성이라는 선물을 보여 줄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씻지 못할 허물이 아니라, 잠재성을 보라.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소크라테..
「혐오는 흘깃 보는 데서 생겨난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남을 보자마자 나와 같은 부류인지 아닌지를 가른다. 그런 인식의 갈림길에서 다른 모든 것이 생겨난다. '우리네'일 때는 눈을 특히 크게 뜨고 얼굴울 더 열심히 바라봄으로써 상대를 한 개인으로 더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타인일 때는 얼굴을 대충 보고 만다. 한 학자는 이를 두고 '''얼굴'에서 받는 인상의 깊이가 다를 것"이라며 신기해했다. 편견의 원류로 보이는 이런 내집단 편향은 타인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멸시한다. 따라서 인종이든, 계층이든, 정치색이든 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낌새가 있으면 바로 편향이 일어난다. 한 번 흘깃 보기만 해서는 타인을 '범주 수준'에서만 이해하므로, 꼬리표를 붙이고, 고정 관념을 적용하고, 인간으로 대하지 않기..
"네트워크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정보 교환이나 제공에 있어 잠시 잠깐의 지연 상태도 참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네트워크 공학은 인간 감성 공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정신적 습관을 컴퓨터 네트워크의 정신없이 빠른 작동 속도에 맞추려다 보면 정신 활동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결국은 쇠퇴하게 된다. 우리가 의식 속에 더 많은 정보를 욱여넣을 수 이는 유일한 방법은 정보 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뿐이다. 컴퓨터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려면 감각을 형성하고 맥락을 구축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공공 영역에서 사려 깊음과 배려심 같은 자질이 전반적으로 퇴조하는 문제적 징후를 목격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와 정치 선전에 민감해지고,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들의 논리를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