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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이제 비로소 콜린스와 나와의 차이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이론가들의 상징적 창조물인 '해방 개념'은 비판이론가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오랫동안 발전되어왔고, 해방의 가능성은 이론가들이 만들어낸 문제공간에서 커다란 흥분과 감정적 에너지를 가지고 논의되어왔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 개념은 그 자체의 생명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콜린스가 오해한 것과 다르게, 나는 이 개념이 탄생된 문제 영역 내부에서는 지적으로 중요하고 흥미로운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콜린스는 이런 해방 개념이 지식인들의 문제공간 영역을 벗어났을 때 과연 그것이 문제공간 내부에서 획득한 '중요성'과 '적절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내가 『담론과 해방』에서 주장하고자 한 것..
「콜린스의 편지에서 내가 무척 재미있게 생각했던 부분은 그가 가핑클의 민속방법론을 비판이론과 대조시킨 부분이다. 콜린스는 비판이론가들이 민속방법론을 자기들 이론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은 민속방법론을 잘못 이해한 데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비판이론가들은 생활세계에서 그들이 발견했다는 '물화'를 문제시하면서, 이론적 비판이 물화를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민속방법론자들의 주된 연구결과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지적 혁명가들'이 아니라 '인지적 보수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의심하지 않는 실재가 사실은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민속방법론에서 소위 '위반 실험'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위반 실험은 일상적 실천에서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가정, 행위, 언어사용을 고의적으로 ..
「내가 이 책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이론적 재구성을 통한 생활세계에 대한 비판을 행위자들을 해방시키는 데 적용함으로써 적합성 공리를 실현시켜보려 했던 비판이론가들의 시도는 궁극적으로 서로의 시도가 이런 이상에 못 미친다고 비난하는 이론적 논쟁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 책에서 논의된 이론가들의 저작을 관통하는 '이론적 비판을 통한 해방'이란 아이디어는 랜들 콜린스가 지식인들의 '상호작용 의례사슬'이라고 부른 과정을 통해서 성(聖)스럽게 돼버린 대상이다. 비판이론가들의 상호작용 의례를 유지하고 계속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감정적 에너지'는 이론가들이 일상행위자들과의 담론에 참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대상에 관심을 집중하는, 즉 서로 잘 알고 있거나 혹은 상상속에서나마 경쟁하는 동료 지식인들과..
「자신의 주변사람들에 대한 재서술을 통해, 오직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프루스트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하이데거는 "자신에게 너무도 중요한 어휘들이 기껏해야 자신의 사적 [어휘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러한 어휘들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완성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티에 따르면, 하이데거를 포함한 지식인들이 저지르는 고질적인 오류는, 자신들의 사적인 이론이 언제나 공적인 유용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고통과 굴욕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전제는 때로는 가학적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사적인 어휘들을 실재에 대한 특권적인 재현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15/07/31 * ..
"더 심오한 아이러니와 더 이상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함에 대한 아이러니스트들의 추구는 직접적인 공적 유용성을 가질 수 없다는 하버마스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의식철학의 패러다임이 그 생명을 다했다"는 징후를 나타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종말의 징후로 보고 있는 것을 나는 생명력의 징후로 본다. 왜냐하면, 나는 하이데거나 니체와 같은 사람들을 좋은 사적 철학자로 이해했지만, 그는 그들을 나쁜 공적 철학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리처드 로티 15/07/31 * 김경만. (2005). 담론과 해방: 비판이론의 해부. 서울: 궁리출판. p. 257에서 재인용. 2014/10/10 - 광인의 철학2013/05/12 - 쓸모없음의 쓸모있음2015/07/23 - 쓸모있어야만 학문이 ..
「그런데 부르디외의 주장을 듣고 난 한 청중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스스로 지배를 내면화하고 있다면,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지배는 잠재의식에 깔려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오히려 지배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당신의 해방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15/07/30 * 김경만. (2005). 담론과 해방: 비판이론의 해부. 서울: 궁리출판. 김경만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 그리고 파슨스 등으로 대표되는 정통 사회과학 전통에서 일상행위자들은 자기 자신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고, 따라서 자신들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세계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그들보다도 훨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론사회과학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고 가정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자연히 이론가들이 가지고 있는 우월한 인식능력이 사회과학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했다. 즉, 이들은 만일 사회과학자들이 이러한 우월한 인식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사회과학적 지식은 단순한 상식 수준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과학 전통에 따르면, 오직 이론가들만이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일상행위자들은 꿰뚫어볼 수 없는..
아래는 김경만이 UC 버클리의 사회학자 로익 바캉 교수와 나눈 서신 논쟁의 일부. 「To. 로익 바캉 부르디외의 장이론은 우리 사회과학자들도 인식론적으로 등가인 수많은 문화생산 게임 중 하나를 하고 있을 뿐임을 논리적으로 암시한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지나칠까요? 물론, 당신은 우리 사회과학자들은 "옳은" 이론과 경험적 사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얘기하겠지요.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지점입니다. 나는 요즘 장 분석을 활용해서 한창 경제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경제학은 과학장의 요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르디외가 이상적으로 상정한 자연과학 모형에 가장 가깝지만, 경험적 타당성의 측면에서 평가할 때 완벽한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경만. 2008.09.01」* 15/07/27 ..
아래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김경만의 『담론과 해방』 초고를 읽고 보낸 편지. 「 김경만 귀하 나는 당신의 흥미로운 생각을 나와 나누려고 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게 보내준 원고를 대단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지식인들이 가진 사명감과 희망을 철학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에 대한 당신의 비판은 그 완결성과 일관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수많은 세월 동안 나를 괴롭힌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도 결국 실패했습니다.(나의 어떻게 보면 완성되지 못한 결론은 최근 논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 논문[「Thinking in Dark Times」 in 『Liquid Life』]을 첨부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우리가 실천적 ..
연구자가 학문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려는 '강박관념'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김경만 자신이 학문세계에서 더 나은 상징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과 상징폭력을 피할 수 없었듯이, 연구자의 이론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서로 격렬히 충돌하는 힘들 사이의 투쟁에서 어떠한 경우든 자유로울 수 없다. 김경만의 말대로 완벽한 해방의 상태는 그려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더 낫게 설명하는 새로운 스토리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그 중 어느 스토리가 앞으로 선택되고 펼쳐지고 변형될지 예측할 수 없다. 진화에서 어떤 변이가 종의 생존과 번영에 유리할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새로움에의 시도는 멈출 수 없으며, 멈춰지지도 않을 것이다. 「『담론과 해방』은 행위자들이 구..
「한국에서 학문을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진정성 있는 학문적 자세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왜? 서구이론을 비판하고 넘어서려는 노력을 해본들 현학적입네, 추상적입네 하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고, '현실 적합성 부재'나 '실천할 수 없는 현학'이라는 난도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이론을 비판하고 넘어서려는 끈질긴 노력은 결국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부르디외가 '글로벌 상징공간에서의 투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읽고 또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고, 행간의 심연을 응시하고, 궁극적으로 '비판적 이해'에 도달하는 과정, 이 모들 것들이 시간과 투자를 요하는 작업이다. 이런 진입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는 글로벌 상징공간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어렵고 그들과 게임을 할 수도 없..
「필자는 20대 청년시절 남들처럼 청운의 뜻을 품고 유럽 벨지움 루벵 대학교에 유학을 떠났다. 그때가 60년대 초반이었다. 어렵고 까다로운 그쪽 대학의 시험에 실패하고 돌아올까봐, 또 부모님의 큰 기대에 실망을 인겨 드릴까봐 유학기간 내내 정말 한눈팔지 않고 주야로 공부에만 매진하였다. 공부 이외에 아무런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필자의 20대 젊은 시절의 미숙한 눈에 비친 서양의 모습은 그 당시의 우리와 비교하여 참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그때 필자는 경제적 콤플렉스를 심하게 느꼈다. 나는 가난한 나라의 백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적으로 동방의 문화민족이다라는 자부심은 있었다. 단지 전쟁으로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그 가난을 털고 일어서면, 우리도 유럽처럼 선진문화 민주주의의 국가를 경..
「"학문은 실천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경구가 얼마나 근거 없는 가정에 의거한 것인가는 오래전 어느 학생이 내게 보낸 이메일 질문을 통해서도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저명한 교육학 교수님들이 그렇게도 많은데 어째서 공교육은 파행의 길을 가고 학생들과 부모들은 입시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 학생은 내가 가르치는 서강대학교 학생도 아니었고 자기 신분을 밝히지도 않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질문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간략히 이렇게 답했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매우 복잡해서 간단하게 이론이 실천을 변형시키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김경동의 이러한 단순한 가정은 다음과 같은 추론으로 '비약'한다. "비록..
「"학문의 민중화"에서 문제의 핵심은 한완상이 미시이론의 성찰적인 해석능력이 있는 일상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념화하고, 과연 그들의 능력과 의견을 이론적 차원에서 얼마나 '존중'하는가이다. 한완상은 세계에 대한 일상인의 해석에 관심을 기울인다 해서 사회학자가 "일상적 민중에게 '인식론적 특권'을 자동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고" 오직 "그들이 원칙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때 그들에게 인식론적 특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칙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민중은 누구란 말인가? 한완상의 글에서 전혀 답을 찾을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유추해본다면 슈츠가 언급한 대로 일정한 교육을 받고 사회문제 전반에 관심을 가지며 자기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이른바 "교육받은 시민"이 '성찰적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