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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아침에 집을 나서니 오랜만에 보는 동네 고양이가 논두렁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는 나를 바라보며 오랜만이라며 짧게 "냥~" 하고 맞이해 주고는 곧 고개를 돌려 어딘지 모를 곳을 응시하였다.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일어나 다시 길을 걸었다. 걷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14/04/17 고양이
몇 달 만에 만난 고양이는 반갑다고 야옹하며 다가와 내 다리에 몸을 부비며 바지에 한뭉텅이의 털을 묻혀 주었다. 나는 잘 있었느냐며 고양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13/06/27 2012/12/11 - 동네 고양이 2012/07/20 - 도도한 고양이 고양이
어느 날 밤, 이탁오 선생은 불당에서 스님 회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림이 의자 밑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회림: "저 고양이는 낮에 사람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가지 않고 의자 밑에 있으니 참 의리 있지 않습니까?" 탁오: "고양이를 사람들은 가장 의리 없다고 하지만, 정이 들면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의리 있는 짐승이 맞지요." 회림: "사람의 욕을 먹는 개야말로 성품이 의로워 집주인을 지켜주고, 쫓아도 가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짖지 않으며, 스스로 더러운 똥이나 오줌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개는 집안이 가난해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개'란 말로 사람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반대로 '사람'으로 개를 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탁오: "그 말이 참..
오늘 아침 길을 걷는데 한 꼬질꼬질한 새끼 고양이가 몹시 추운 듯이 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어주려고 하니 도망가였다. 그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있었더니 조금 있다가 슬며시 다가와 고개를 내밀었다. 열심히 쓰다듬 쓰다듬 해주었다. 어찌나 말랐는지 토실토실한 촉감이 느껴지지 않고 뼈가 만져졌다. 일어서서 가려 하자 고양이는 가지 말라고 앞길을 막으며 나를 붙들고 늘어졌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13/02/17 고양이 친구들
오늘 아침 마을 어귀를 벗어나는 언덕 위로 올라서는데 웬 처음 보는 흰 고양이가 언덕 정상에 떡하니 앉아 "꼼짝마라"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고양이가 앉아 있는 곳은 마을을 벗어나 언덕을 내려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고양이와 대치하게 되었다. 나도 "흥! 네 까짓게 어쩔 테냐"는 눈빛으로 마주 쏘아보아 주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통행세라도 내야 길을 비켜줄 기세였다. 긴장감이 도는 대치 국면의 정적 속에서, 딱따구리가 부지런히 나무를 쪼는 소리만이 쾅쾅 얼어있는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고양이 뒤에는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고 있었다. 12/12/19 고양이 친구들
강추위가 계속되는 아침 고양이가 햇볕 잘 드는 곳에 예쁘게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동네 아저씨가 그 예쁜 자태를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고양이에게 살며시 다가가 "어디 아프나?"하고 다정하게 물었다. 고양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2/12/11 다른 고양이 글 보기
구름에 달빛 번진 밤 고양이는 의젓이 앉아 조용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고양이 눈길 머무는 곳 그 어디인가 풀잎 소리 희미하다 12/11/22
집으로 돌아가는 캄캄한 밤길, 못 보던 하얀 고양이가 길가에 앉아있다. 나를 보더니 놀라 잽싸게 도망칠 자세를 취한다. 나는 고양이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멀찍이 돌아서 길을 걷는다. 그랬더니 고양이가 오히려 쪼르르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얌전히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만져달라는 것이겠지. 이따금 집에 가는 길에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나 이렇게 만져달라고 보채곤 한다. 쪼그려 앉아 쓰다듬어 준다. 흐뭇해하는 하얀 고양이. 겨울로 접어드는 춥고 까만 밤 고양이도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웁다. 고양이는 나보다 앞서 걸으며 나머지 길을 에스코트해주었다. 12/11/19 다른 고양이 글 보기
오늘 아침 등교길이었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교정 어느 쉼터 지붕에 조그만 하얀 고양이와 역시 조그맣지만 안하얀 고양이가 서로 머리를 기대고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그 고양이의 하얀 배를 따라 세상도 함께 천천히 한숨 한숨 숨을 쉬며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12/09/13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별이 조금씩 보였다. 아는척만 하는 사이인 동네 고양이가 있다. 처마 밑에 도도하게 앉아 있길래 늘 그랬든 나 역시 도도하게 아는척만 하고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그 고양이가 몹시 할 말이 있다는 듯 냐옹거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멈췄다. 그랬더니 고양이가 잽싸게 다가와서는 서러운 일이 있었다는 듯 와락 안겨와 냐옹냐옹 부비부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저 말없이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랑이 고플 때는 누구도 도도할 수 없는 것 같다. 12/07/20
벚꽃 쏟아지는 벤치 위 한 고양이님이 늘어지게 누워 벚꽃 맞으며 아침 햇살을 즐기고 계시었다 살며시 다가가 슬쩍 쓰다듬어보니 움찔 놀라 눈을 떴다가 이내 내 특별히 네게 쓰다듬을 허락 하노라 하는 표정으로 고쳐 누워 다시 눈을 감으시었다 아, 지고의 풍류는 고양이님이 다 누리고 계시었다 12/04/15 고양이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