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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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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선생은 고전번역을 박사학위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적극 동의할 뿐 아니라, 인문학 분야를 넘어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박사학위까지는 아닐지라도 번역을 중히 여기는 정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계는 마치 갈증에 미친 흡혈귀마냥 외친다. "새로움, 새로움을 다오!" 그러나 새로움은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들이나 (간신히) 개척하는 경지이지(일부 분야 제외), 학문의 길을 이제 막 걷기 시작했거나 얼마 길을 못 간 초짜들이 개척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보자, 백날 새로움 타령하는 학계에서, 정말 새로운 논문이 쏟아지고 있는가? 거의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심지어 논문을 쓴 본인조차 다시는 자기인용하지 않는 논문들, 좀 솔직하게 말해서 쓰레기같은 논문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을 뿐이다(나 역시 예외가 아님). 그런 논문을 양산해낼 역량으로 각 분야의 고전 번역에 힘썼다면 번역되지 않은 고전이나 명저가 몇 안 되었을 것이고,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않은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쌓았을 것이다. 인문/사회 분야에서 우리말로 소화되지 않은 학문은 남의 학문일 뿐이고, 우리 사회와 무관한 현학일 뿐이다. 아래는 도올 선생의 말.

「나는 82년도 하버드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번역의 중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하였고 "한문해석학"이라는 새로운 치학 방법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제도적 실현을 역설하였다. 예를 들면, 서구학계와 미국학계에서 고전학이 발달하는 이유는 곧 치열한 고전번역 작업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국학고전자료의 초역작업을 박사학위논문의 주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주장은 전혀 인정되지를 않았다. 학계가 이러한 나의 주장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계의 주도권을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번역"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없기 때문에, 표절에 가까운 천박한 논문쓰기로 한평생을 보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논문이란 해석 안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가면 되고, 여기 저기 관계 서적들을 참고하면 어떻게든 외장을 갖출 수 있지만, 번역이란 한 줄 한 줄, 한 글자 한 글자에 소략함이 있을 수 없고, 더 중요한 것은 고전의 창출자에 대한 생평이나 시대배경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서는 적당한 논설이 불가능하다. 번역이야말로 가장 오리지날하고 가장 창조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란 "왜놈들이나 하는 천박한 짓"이라는 식으로 폄하하여 온 것이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이었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왜놈"을 베껴먹으면서 살아온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왜놈"이야말로 자신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한 역설적인 단어였다. 일본학계야말로 번역을 중시하는,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학문의 장인 것이다.」*

13/08/20

* 도올 김용옥, <논어한글역주>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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