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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

모험러
연암 박지원은 열하에서 여러 신기한 마술을 구경한다. 그 중 한 마술은 이런 것이었다. 마술사가 유리 거울을 탁자 위에 놓고 거울을 열자 거울 안에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집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지극히 평화롭게 노닌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부러움을 참지 못하고 그것이 거울인 것도 잊은 채 막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어한다. 그 순간 마술사는 갑자기 거울 문을 닫는다. 그리고 거울 문을 다시 열자, 맙소사, 그 사이 세월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 거울 속 세상은 적막하고 황량하기만 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소름이 끼쳐 그만 달아나 버린다. 이 장면을 본 연암은 말한다.

 「아!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구나. 세계의 몽환이 본디 이와 같아서 거울 속의 염량 변천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구나. 인간 세상의 가지가지 일들도 다 그러하여, 아침에 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의 부자가 오늘은 가난해지고,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법이다. 거울 속의 장면이 마치 '꿈속에 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니, 나고 죽는 일이나 있거나 없는 일들 중에 대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리오.
   그러니 세상에 착한 마음과 보살심을 지닌 형제들에게 말하노라. 환영에 불과한 세상에 몽환 같은 몸으로 거품 같은 금과 번개 같은 비단으로 인연이 얽어져서 기운에 따라 잠시 머무를 뿐이니, 원컨대 이 거울을 표준 삼아 덥다고 나아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며, 몸에 지닌 재산을 지금 당장 흩어서 가난한 자를 두루 구제할지어다.」*
 
 13/03/14
 
 * 고미숙,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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