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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것이 적은 자는 해오라기를 기준으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기준으로 학을 위태롭다고 여긴다. 그 사물들 각각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자기 혼자 화를 낸다. 한 가지 일이라도 자기 생각과 같지 않으면 만물을 모조리 모함하려 드는 습성 때문이다.

하지만 저 까마귀를 한번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건만 홀연 우윳빛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녹색빛을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올라 눈이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되고, 혹은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거늘, 사람이 눈으로써 먼저 그 빛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단지 눈으로만 정했으리오. 보지 않고서 먼저 그 마음으로 정해 버린 것이다. 거기다 까마귀를 검은색으로 고정 짓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또다시 까마귀로써 천하의 모든 색을 묶어 두려 한다. 까마귀가 과연 검기는 하지만,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른빛과 붉은빛이 그 검은 빛깔 안에 들어 있을 줄 짐작이나 하겠는가.」

- 연암 박지원, <능양시집서> 중*

13/03/12

* 고미숙,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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