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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사막 본문

명문장, 명구절

도시라는 사막

모험러

「집 밖으로 나오자 차고 슬픈 공기가 밀려들었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찌푸린 하늘, 어둡고 흐릿한 강줄기, 사방이 온통 생명이 매말라 버린 사막 같았다. 아침 바람에 먼지 쪼가리들이 소용돌이쳤다. 머나먼 사막에서 일어난 모래가 이제 도시를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사내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사막에 둘러싸인 가만히 있었다. 깊이 잠든 주택 단지를 지나는 길이었다. 순간 그는 앞에 놓여 있는 황야에서 명예에 대한 야망, 자기 부정, 인내의 신기루를 보았다. 신기루 속의 아름다운 도시에는, 그를 사랑해주는 이들과 그를 다정하게 바라봐 주는 이들이 어울려 있는 회랑도 있고, 삶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영글어 가는 정원도 있고, 눈앞에서 반짝이는 ′희망′이라는 샘도 있었다. 잠시 신기루가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신의 셋방으로 올라가 옷도 벗지 않고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헛된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슬프고 슬프게도 태양은 떠올랐다. 햇빛이 비치는 어디에도, 뛰어난 능력과 섬세한 감성을 갖추었으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내,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능력과 감성을 쓰지 못하는 사내, 자신을 갉아먹는 셰균인 알면서도 갉아먹지 못하게 세균을 내치지 못하는 사내보다 슬픈 광경은 없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더클래식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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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1 Comments
  • 프로필사진 그린필드 2019.08.23 03:09 위 글은 참으로 와닿으면서도, 한편으론 저 불쌍한 사내를 진정으로 동정하는 것인지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헛된' 눈물이라... 저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사내의 심정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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