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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농가에는 텅 빈 제비집이 세 채 있다. 봄을 몰고 온 제비가 첫 번째로 새끼를 낳은 곳은 내 방 처마 밑, 작년에 짓고 한철 잘 지내다 간 바로 그 집이었다. 나는 어미가 밤낮으로 새끼를 품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곤 했다. 그러나 새끼들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죽었다. 상심한 제비가 다시 힘을 내 집을 지은 곳은 주인집 처마 밑이다. 며칠 만에 집을 뚝딱 짓는 제비의 묘기가 볼만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새끼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그렇게 제비와 이별하나 했는데 제비 부부는 한 번 더 집을 짓고 번식을 시도했다. 내 방 근처 처마 밑이었다. 새끼를 품은 어미 제비의 눈망울이 간절해 보였다. 오늘 아침 그 제비집을 들여다보니 제비가 모두 떠나고 없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주인집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왜 제비 새끼들이 오래 살지 못하고 이렇게 다 죽는 건가요?"

"옛날에는 다 초가집이어서 한낮에도 처마 밑이 시원했거든. 그런데 요즘은 다 슬레이트 지붕이라 제비집이 너무 뜨거운 것 같아. 또 옛날에는 약을 안 쳤지. 요즘에는 약 안치고는 농사 못 져. 그래서 제비가 약 묻은 먹이를 물어다 줘서 죽나 싶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구먼."

그렇게 내가 사는 곳에는 텅 빈 제비집 세 채가 덩그러니 처마 밑에 놓여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어딘지 허전하고 왜인지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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