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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은 저절로 전개되는 한편, 극단까지 치달은 후에는 반드시 전복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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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은 저절로 전개되는 한편, 극단까지 치달은 후에는 반드시 전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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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멈출 줄 모른다.' 바로 이러한 것이 '상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경향'(역사 속의 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이다. 당 말엽(9세기 후반)에 발발하였던 농민의 반란이 그 좋은 예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반란이 진정되면 곧장 다른 반란(구보의 반란에 이은 방훈의 반란과 같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향은 '저절로 전개되고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된다'. 경향은 그 스스로 점진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는 법이다. 또 다른 종류의 예로 황후가 국정에 간섭하는 섭정의 경향을 살펴보자. 3세기에 취해졌던 유익한 조치는 이러한 간섭을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섭은 당나라 때 다시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간섭에 단호하게 종지부를 찍었으나, 송나라 시절에는 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다시 성행한다. 송대의 섭정(그러나 진정으로 정당화되지는 못했던)은 악이 다시 만연하기 시작할 때(11세기, 인종이 미성년이었을 때) 펼쳐졌으나, 이 악은 그 다음 왕들의 치하에서도 계속해서 ― 더 이상 섭정의 구실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 그 맹위를 떨친다. 홈이 한 번 패면, 경향이라는 것은 저절로 하나의 관성이 되어 그것을 고치려는 이후의 모든 시도와 대립한다. 그래서 경향을 후진시키거나 그 경향에서 벗어나기는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왕조의 점진적인 쇠퇴를 추적해볼 수 있다(왕부지는 17세기에 명조의 종말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쇠퇴에 그만큼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즉, 돌이킬 수 없는 특정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왕조의 몰락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때는 적의 강력함이나 잘못된 정치적 결정 또는 그 효과가 의심스러운 조치(예를 들어, 송대의 여진족에 힘을 부여해준 조치 또는 진나라와 맺은 불행한 동맹)를 탓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다른 모든 역사적 변화와 마찬가지로 쇠퇴는 언제나 보편적이다. 그것은 개별적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일반적인 퇴락과 관련된다. 일반적 퇴락이 일단 시작되면 '군주는 더 이상 진정으로 군주답지 못하고', '재상도 더 이상 재상답지 못하며', 풍기가 문란해지고, 필수불가결한 도덕적 통합도 상실된다. 모든 것이 왜곡되고, 아무것도 지탱될 수가 없게 된다. 어떠한 요인도 동일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완벽한 해체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거대한 전복만이 새로운 정세를 만들어냄으로써 재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왕부지에 따르면 역사의 흐름은 사실상 이중적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즉, 모든 경향은 시작되자마자 저절로 전진하는 한편, 극단까지 치달아 고갈된 뒤에는 반드시 전복된다. 이 원리는 절대적으로 일반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원리가 번갈아 나타남을 정당화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부정적인 경향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전복의 두 양상을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부정적 경향은 점진적인 일탈을 낳기 때문에 뒤로 되돌아기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며, 이 경향이 스스로 고갈되지 않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변화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 둘째로, 부정적 경향이 오히려 불균형 상태로 나아가는 경우에는 이 불균형으로부터 반작용이 생겨난다. 최초의 불균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반작용 또한 크다. 첫 번째 상황에서 우리는 수동적으로 팬 홈에 점점 더 빠져듦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인 반면, 두 번째 경우에서는 반대되는 두 양극이 서로 관련됨으로써 균형의 역학이 만들어진다. 이때부터는 전략도 달라진다. 즉, 전자의 경우에는 가능한 한 빨리 재앙을 예견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요, 후자의 경우에는 이 역전의 효과에 기대거나 시간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사실 경향이 상황의 불균형 상태로 나아간다면, 경향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그 경향은 더욱더 불안정해진다. 다시 말해, 경향이 한 쪽에서 더 무거워지면 '무거워질수록', 다른 쪽에서는 더욱더 '가벼워지고', '역전이 쉬워진다'. 이러한 전복의 '논리'는 모든 과정의 규칙적인 흐름('하늘') 속에 새겨져 있다. 예를 들어, 정치에서 너무 강하게 작용하는 압력은 그 다음 단계에서는 느슨하게 바뀐다. 한조의 위대한 황제인 무제가 그 증인이다. 그는 당시 매우 권위적이고 야심차며, 팽창주의적이고 경비를 많이 지출하는 정책을 개시했고, 이 정책에 저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과잉 그 자체로부터 유약함이 나오는바, '실현 불가능한 길로 접어들면 접어들수록' 더욱더 '운명적으로 고생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한숨 소리는 곳곳에서 커지고, 황제 자신도 내심 불안해졌다. 그래서 황제는 자신의 생애 말엽에 군대 파병을 중단시키고, 내치를 완화한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타인들의 반복된 간청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시각이 이미 변했기 때문이다'. 송나라 때에도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새로운 황제(11세기의 성종)는 그의 재상(왕안석)을 이용해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는데, 이 재상은 모든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파벌만 지지하고 다른 파벌들을 모두 침묵하게 만들면서 이상향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한 개혁을 실행해나갔다. 그러나 그 다음 정권에서 그러한 조치는 하나둘 폐지되었는데, 이는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혁명은 반작용을 낳고, 그 결과 저절로 해체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5/09/13


* 프랑수아 줄리앙. (2009). 사물의 성향: 중국인의 사유 방식. (박희영, Trans.).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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