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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가격은 옳다 본문

명문장, 명구절

닥쳐라, 가격은 옳다

모험러

'신은 옳다.'고 말하던 중세의 성직자와 '가격은 옳다.'고 말하는 현대의 경제학자는 기묘하게 닮았다. 성직자가 중세의 신분체계를 수호했다면, 경제학자는 현대의 계급체계를 수호한다. 신은 옳다, 그러니 너의 천한 신분은 신의 의지에 따른 네 운명이다. 가격은 옳다, 그러니 너의 비참한 처지는 시장의 의지에 따른 합리적 결과다.


「물리학자 도인 파머(J. Doyne Farmer)와 경제학자 존 지나코플로스(John Geanakoplos)는 이렇게 지적했다.


"경제이론은 시장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자산의 가격은 그 기본적인 가치의 최선의 척도이자, 미래 가격에 대한 최선의 예측기다."


예를 들어보자. 1996년 3월, 그리고 2002년 10월, 나스닥 지수는 1,140이었다. 이 두 날짜 사이에 들어 있던 2000년 3월에, 지수는 5,048까지 치솟았다.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고전파 논리 피아노에 따르면 이 모든 가격들은 다 옳다. 심지어 그것을 뒷받침하는 학술 문헌들도 있다.


또 다른 예는 2008년 석유 가격 급등이다. 이 기계에 따르면 모든 것은 수요공급의 힘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오작동도 없다. 어떤 경우에도 시장가격은 옳다. 다른 자산이나 서비스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인간의 노동도 예외는 아니다. 하버드대학의 경비 용역들이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한다고? 미안하지만, 그 가격은 옳은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이 고작 몇 센트를 받으며 월마트에서 판매할 옷을 만들고 있다고?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그 가격은 옳다. 최고경영자들은 보수로 몇 억 달러씩이나 받는다고? 암, 그래야지, 그 가격은 옳으니까. 인구의 최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부의 비율이 전체 부의 40퍼센트에 달하고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그럴 만하니까 그렇겠지. 시장가격은 진리거든. 은행은 파산했는데 은행 직원들은 거액의 상여금을 받는다고? 멋지다. 하지만 가격은 옳으니까.


심지어 이것은 환경문제도 설명해준다. 종이 멸종에 임박했다고? 가격은 옳다. 파국적인 기후변화가 닥쳐온다고? 가격은 옳다. 탄산으로 오염된 바다? 가격은 옳다니까.


만일 세계 경제의 어떤 구성원이 불행을 느끼거나 이들의 말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혹은 규제당국에서 뭔가 구린내가 난다면, 혹은 누군가가 그저 이 체계가 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불공정하며 모종의 붕괴를 겪을 위험이 있다고 느낀다면, 신고전파 논리 피아노는 그에게 만사가 잘되고 있다고 안심시켜줄 것이다. 보라, 가격은 옳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논리적이다.」*


15/03/18


* 데이비드 오렐. (2011). 경제학 혁명: 신화의 경제학에서 인간의 경제학으로. (김원기, Trans.). 행성B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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