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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도는 실재인가 환상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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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도는 실재인가 환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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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도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는 두 사회가 다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방식이다. 서양 사회는 주로 (척도에 의존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았고 동양에서는 (결국 무량함을 지향하는) 종교와 철학을 중시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이 문제를 주의 깊게 생각하면 어떤 점에서는 무량함(the immeasurable)을 으뜸가는 실재로 본 동양이 맞았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척도는 인간이 만들어낸 통찰 방식이다. 인간에 우선하며 인간을 넘어선 실재는 그러한 통찰에 좌우될 리 없다. 반면 척도가 인간에 우선하며 인간과 무관하다고 보면 통찰을 객관화시켜 고정되고 변할 수 없게 만들며 결국 이 장에서 말한 조각내기와 전반적인 혼란을 불러온다.

이미 고대에 무량함을 실재로 생각한 현명한 이들은 척도 또한 실재의 부속 측면,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측면에 대한 통찰임을 알 만큼 현명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도 (그리스인들처럼) 척도에 대한 통찰이 우리 삶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어쩌면 척도가 으뜸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척도를 실재의 본질로 보는 것이야말로 환상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도 옛 가르침대로 따라 배우면, 그 뜻이 일상 습관에 묻히기 쉽다. 그렇게 되면 척도의 깊은 의미는 사라지고 "척도는 환상이다"를 읊조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기존 가르침에 담긴 통찰을 자기 나름대로 창의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순응하는 틀에 박힌 학습 결과, 동서양 모두에서 진정한 통찰은 거짓과 오해로 변질되는 결과를 낳았다.」*

14/09/12

* 데이비드 봄, <전체와 접힌 질서: 물리학계 이단아 봄의 양자물리학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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