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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앞에 정직하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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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앞에 정직하라

모험러
「혜강 최한기는 이들과는 달리, 통제가 아니라 개발, 억압이 아니라 자유를 권장함으로써 안정과 번영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제의 진원을 이익의 과도가 아니라, 이익에 철저하지 못한 데서 찾았다. 만일, 이익에 정직하기만 하면, 인류사의 오랜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 혜강은 이 실용주의적 자유주의적 원리가 인종과 문화, 시대와 상황에 구애 받지 않는 '보편적' 원리, 글로벌스탠더드라고 자신했다.

이 발상은 동아시아 학술의 근본 원리를 뒤바꾼 혁명적 사고이다. 그리고 지금도 또한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원리이다. 우리는 다들 재리를 좋아하고 명성과 권력을 좇으면서도 아닌 척하거나, 공개적으로는 경멸해왔다. 이같은 분열적 태도는 조선조 아래 물려받은 유구한 유산이다. 조선조 선비들의 근본적 분열증은 학문은 도학을 하면서, 목표는 과거科擧에 두었던 데 있다. 이 딜레마 앞에서 선비들은 다양한 타협과 절충을 했다. 아예 과거를 포기하고 도학을 하겠노라고 문고리를 건 사람도 있고, 도학은 호주머니에 넣고 모른 척 출세를 향해 나아간 사람이 있으며, 생각은 권력에 있는데 말은 언제나 도학을 달고 다닌 사람도 있다. 생각이 분열되어 있고, 길이 두 갈래이니 온전히 수습될 수가 없다.

조선조를 통틀어 순수 도학형의 인물은 드물었다. 퇴계는 나중에야 도학이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도산으로 퇴거해버렸다. 율곡은 벼슬길에 나선 자신을 '생계가 어려워서'라고 친구들에게 변명해야 하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산야에 물러나 도학을 자임한 사람들 상당수가 과거시험에 낙방했거나, 그것을 겁낸 사람들이었다. 정치에 들어서서도 그들은 별로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절대적 순수'를 명분으로 내어걸고, 정치적 파당과 자기들만의 권력게임에 열중했다. 그게 주류 정치의 현실이었다. 산림으로 물러난 도학자들도 그곳 지방의 정신적 권위이고자 했을 뿐, 사무와 민생에 별다른 구체적 보탬을 주지 못했다. 이 사태를 호도하지 말고 분명히 각성해야 길이 보인다.」*

14/09/12

* 한형조, <왜 조선 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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