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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getarian Myth(채식의 배신) 본문

리뷰, 서평, 감상

The Vegetarian Myth(채식의 배신)

모험러
<The Vegetarian Myth>*의 한국어 번역판("채식의 배신")이 나왔나 보다. 나는 원서를 가지고 있다. 원서의 아마존 리뷰를 보면 이 책의 평가가 양극으로 나뉘어있다. 채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책에 어떻게 열광하고, 채식하는 사람들은 이 책의 비판에 어떻게 응답하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의 체험을 묘사한 대목이다. 세상을 구원하겠노라는 신념으로 극단적 채식을 시작한 후 6주 만에 몸에 이상이 오고 그 후 계속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갔지만, 그럼에도 무려 18년(!)을 완전채식을 유지하다가 포기한 경험 말이다. 18년 만에 고기를 먹게 된 기쁨과 환희를 사뭇 감동적으로 적어놓았다.

그런데 이 저자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간 것 같다. 저자는 완전채식주의자에서 더 극단적인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저자의 결론은 땅과 나무와 풀을 복원하기 위해 사실상 농경을 포기하고 거의 수렵-채집 생활로 돌아가 서로 먹고 먹히는 자연의 질서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사실 저자는 파멸이 곧 닥칠 것이고, 우리가 받아들이든 말든 좋든 싫든 우리는 앞으로 거의 수렵-채집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본다). 농업이 지구의 생태위기, 인류의 계급투쟁, 여성억압을 낳은 근원이므로, 현대농업을 포기하고 농경문화에서 고대 애니미즘(정령신앙)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미래고, 또 그렇게 될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채식이 몸을 파괴한다는 '과학적 진실'도 극단적이다. 채식이 몸에 유익한다는 수많은 반대편 연구결과와 사례가 너무 쉽게 묵살되고 있다. 아직 학계에서도 논쟁중인 원시 인류의 생활과 식습관도 너무 쉽게 단정되고 있다. 열심히 연구되고 실험되고 있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의 농업과 농업공동체의 가능성도 너무 쉽게 무시되고 있다. 그러니 극단적인 전망과 극단적인 대안만이 저자 손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나마 학계 연구를 직접 인용한 것은 별로 없고, 어느 아마존 리뷰어가 잘 꼬집었듯이 대게는 인터넷 정보와 2, 3차 문헌에 의지하고 있다. 

이 저자가 채식을 비판하는 데 써먹는 도덕적, 정치적 '논리'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지 말자. 논리야 뭐 논리일 뿐이니까. 저자가 몸이 상하면서까지 극단적 채식을 했던 것이 논리 때문이 아니었듯이, 저자가 갑자기 180도 방향을 튼 것도 논리(혹은 '정보력') 때문이 아니니까. 고기를 먹고 느낀 환희의 체험이 먼저고 논리는 그 후 만들어진 거지. 그러니 채식주의자들이 현대 농업의 본질과 생명의 모순, 채식 문화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숙고를 저자만큼 해보지 않았고, 그것에 무지하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참고로 리처드 하인버그가 <월드피스 다이어트>에서는 채식을 해야하는 근거로 인용되고, <채식의 배신>에서는 채식을 하지 말아야하는 근거로 인용된다!) 채식주의자들이 저자보다 논리가 부족해서 혹은 무지해서 여전히 채식을 고집하는가? 그 사람들은 저자와는 다르게 채식을 하면서 여전히 건강하며 행복하기 때문에 저자가 주장하는 식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채식주의를 주장하는 책이든 그렇지 않은 책이든, 내가 이런 책에서 유심히 읽는 부분은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변화를 겪었고, 어떤 직관을 제시하느냐이다. 그 외 구구절절 늘어놓는 '과학적 근거'니 뭐니 하는 것들은 거의 흘려듣는다. 이 바닥의 과학적 근거들은 내일이면 또 뒤집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과학적 근거들은 정작 '내 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채식으로 몸이 튼튼해지고 영적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월드피스 다이어트>의 저자 윌 터틀처럼). 어떤 사람은 채식으로 몸을 망치고 오히려 성질만 버릴 수도 있다(<채식의 배신>의 저자 리어 키스처럼). 어떤 사람은 주기적으로 개고기를 먹어줘야 기력을 회복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만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당하는 동물에 연민을 느껴 고기가 도저히 입에 들어가지 않아 채식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고통당한다는 깨달음과 자비심을 가졌지만 채식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친구 중에는 채식에 대해 아무 신념도 없지만 단지 고기가 맛이 없다는 썰렁한 이유로 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녀석도 있다.

결국,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진리'나 '진실'은 없다. 다만 내 몸을 갖고 주의 깊게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내게 호기심을 주는 것은 왜 신비주의자들과 도 닦는 양반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채식을 할까이다. 심지어 거의 모든 전통 교리와 규범, 관습을 거부한 오쇼조차도 채식은 철저히 지켰다. 이유가 뭘까? 어떤 통찰이, 어떤 느낌이 그들에게 채식을 하게 하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다만 실험해 볼 뿐이다. 오직 해보고 겪어본 것만이 내 '진리'니까. 해보고 별것 없으면 그만두면 그만이다. 만약 세상의 모든 성인이 채식을 주장한다고 해도, 내게 맞지 않으면 내겐 진리가 아닌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13/02/25

* L. Keith, <The Vegetarian Myth: Food, Justice, and Sustainability>
[한국어판: 채식의 배신- 불편해도 알아야 할 채식주의의 두 얼굴]
*** 저자를 인터뷰한 유튜브의 동영상 댓글란에서도 채식이 건강에 좋다 나쁘다, 고기가 아니라 곡물이야 말로 만병의 원인이다 아니다, 고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문명을 포기하는 것이야 말로 지구 생태계 위기의 대안이다 아니다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 링크를 참조. 찬찬히 읽어보면 의외로 굉장히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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