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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증오 본문
사랑의 크기만큼 미움의 크기가 숨어 있다면 그것은 무위(無爲)의 사랑이 아니라 유위(有爲)의 사랑일 게다. 일체의 유위법은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하였는데*, 유위의 사랑, 즉 조건지어진 사랑도 마찬가지일 테지.
「비올렛타가 그 같은 형편이 되었다. 몸이 아닌 정을 주게 된 첫 남자가 알프레도였다. 정이란건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떼어내기가 끔찍히 어려운 것이다. 그렇더라도 남자를 위해선 적어도 겉으로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올렛타는 알프레도가 정나미 떨어질 일을 연출한다. 다른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기는 순식간의 일이다. 사랑이 깊었다면 깊은 만큼 증오도 그만큼 격렬하다. 알프레도는 격렬한 증오를 갖고 비올렛타를 떠난다. 세월이 조금 지났다. 남은 비올렛타는 병에 걸린다. 그리고 죽기 전의 상황에 처한다. 춥고 어두운 병상에 누워 비올렛타는 행복했던 알프레도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 때 부르는 아리아가 ‘지난 날이여 안녕’이다.
안녕, 지난날의 행복했던 꿈들이여
장밋빛 내 얼굴은 창백해지고
알프레도의 사랑도 이제 없어
내 영혼의 안식과 위로는 어디에
..........
그 아리아를 성우들이 낭독하던 중간에 방송했다. 오후 네시 사십분쯤의 일이었다. 짧은 겨울해가 슬픈 얼굴을 하고 검붉게 울고 있었다. 노을은 그런 해의 눈물이었다. 이어폰으로 연결된 내 한 쪽 귀에 비올렛타의 절망적인 아리아가 흘러 들어왔다. 몽세라 카바예였다. 나는 작업을 하다 말고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발끝에서부터 전류가 발생하더니 온 몸에 퍼진다. 몸이 떨리고 파도치듯 일렁였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비올렛타가 정말 불쌍했다.」**
12/12/23
* 금강경의 한 구절. "일체 모든 유위법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으니 이렇게 관찰할지라."
** 장정호,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http://to.goclassic.co.kr/etc/13677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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