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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전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가? 본문
「과학사가였던 토머스 쿤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의 발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과학적 지식의 성장도 누적적이라기보다는 불연속적이고 비약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쿤은 과학혁명기를 분석하면서 과학의 지식은 누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혁명처럼 패러다임 전체가 바뀜으로써 비약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논증했다.
과학혁명이란 옛 패러다임이, 전반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서로 양립되지 않는 새것으로 대치되는 비축적적인 발전 과정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외에 말해야 할 것이 더 있는데, 그 본질적 요소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째서 혁명이라 불려야 하는가? (···) 서로 경쟁하는 정치 제도들 사이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경쟁하는 패러다임들 사이의 선택은 서로 양립되지 않는 과학자의 사회생활 양식 사이의 선택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따라서 선택은 단순히 정상과학의 특징을 평가하는 방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결정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선택은 부분적이고 특정 패러다임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패러다임이 바로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은 반드시 선택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지며, 여기서 패러다임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순환성을 띠게 된다. 이는 그룹마다 제각기 그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논증에 그 고유의 패러다임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쿤 이전에 카르납을 중심으로 하는 논리경험주의적 입장(넓게 보면 앞서 철학의 유용성을 극도로 제한했던 램지 역시 이러한 입장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과 포퍼가 제안한 반증주의 사이의 논쟁과는 전혀 다른 국면에 위치했다. 비록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가 과학적 방법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지만, 그럼에도 두 입장 모두 과학이 합리적인 절차를 지닌 객관적 지식의 체계라는 점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합리성이 어떻게 확보되는지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셈이다.
만약 쿤의 이야기대로라면 결국 임레 라카토스가 말했던 것처럼 과학적 지식의 성장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과학의 발전이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 아니면 라카토스가 염려했던 바처럼 목소리 큰 사람들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간단히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16/05/18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2015/08/31 - 가치들의 투쟁에서 무엇이 승리할지는 아무도 모르며 어떤 학문도 그 투쟁을 지배할 수 없다
2015/08/24 - 과학의 힘은 증명이 아니라 반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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