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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망명을 지향하는 삶의 전략 본문

명문장, 명구절

정신적 망명을 지향하는 삶의 전략

모험러

「고이티솔로와 데리다의 메시지는 뮈세의 메시지와는 사뭇 다르다. 이 두 소설가와 철학자는 공히 위대한 예술에는 그 어떤 고국 땅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로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수많은 고국 땅, 가장 틀림없는 사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고국 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비결은 집 없음이 아니라, 많은 집들을 내 집으로 삼는 것이며, 그 각각의 집 안팎에 동시에 있는 것이며, 친밀함과 외부인의 비판적 시선을 결합하는 것이며, 참여와 초연함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는 안착한 사람들이 도저히 배우기 어려운 기술이다. 이 비결을 터득하려면 망명의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엄밀히, 안에 있으되 그곳에 속하지는 않는 식의 망명 말이다. 이 상황이 초래하는 '국한되지 않음'의 상태는 내 집의 진실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따라서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모국어는 세대 간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의사소통의 흐름이자 글로 전해진 어떤 것보다도 늘 더 풍성한 언어의 보고이며 늘 새롭게 단장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임을 밝혀준다.


조지 슈타이너는 사뮈엘 베케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가장 위대한 현대 작가로 칭한 바 있다. 이들의 공통점, 이들을 위대하게 만든 점은 바로 이들 세 작가 모두 똑같은 편안함으로 ― 똑같이 '집처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 하나가 아닌 몇 개의 언어 세계를 돌아다녔다는 점이다(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언어 세계'는 일종의 동어반복이다. 우리 각자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언어적'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 즉, 말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말은 가시적이지 않은 것들로 이루어진 그 칠흑 같은 바다에서 가시적인 형태들로 된 섬들을 밝혀주며, 중요치 않은 것들이 뚜렷한 형식 없이 뭉쳐 있는 거대한 덩어리에서 여기저기 연관성이 있는 지점들을 표시해준다. 말은 이 세상을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한 대상들의 범주들로 잘게 쪼개주고, 이 대상들이 친한지 반목하는지, 가까운지 먼지, 끌리는지 서로 소외시키는지 드러낸다. 그리고 거기에 독자적으로 머물고 있는 한에서는 그런 모든 인위적 명칭의 대상들을 현실 수준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우리는 그러한 우주를 적어도 하나 이상은 살아야 하고, 찾아가야 하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한 우주가 어떤 식으로 부여되든지, 외관상으로는 난공불락의 구조이더라도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인간의 창의력을 탐지해야 하며, 자연의 법칙과 그 필수요소가 무엇인지 자연의 본성을 헤아리려면 어느 만큼의 인간의 문화적 노력이 요구되는지 알아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그러한 문화적 노력에 깨달음을 가지고 ― 이러한 노력에는 많은 위기와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 노력의 지평은 무한하다는 것을 잘 아는 ― 참여하려는 용기와 결단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하다. 


늘 창조(그리고 발견)는 어떤 규칙을 깨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그저 똑같은 일상에 불과하다. 망명자들에게 규칙 파괴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필연 같은 것이다. 망명자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나라의 규칙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규칙을 별 껄끄러움 없이 자연스럽게 대하고 고분고분 순응함으로써 그곳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원래 태어난 나라의 입장에서는 망명을 했다는 사실은 일종의 원죄로 기록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원죄를 저지른 자들이 이후 행하는 모든 일들은 이들이 규칙을 깨는 부류라는 증거로서 폄하된다. 적극적 죄이든 소극적 죄이든, 규칙 파괴는 망명자들의 상징적 특성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망명자들은 그들의 삶의 여정을 걸치게 된 그 어떤 나라의 본토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게끔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로 말미암아 이들 망명자들은 자기가 관련된 모든 나라에 그 나라들이 절실히 원하고 있던 선물을 부지불식간에 가져다주는 셈이 된다. 이 선물은 그 나라들이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받을 것이라 예상 못했던 그러한 것들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망명'은 꼭 물리적, 육체적 이동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망명은 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의미하긴 하지만 꼭 그러라는 법은 없다. 크리스틴 부룩-로즈(Christian Brook-Rose)가 (그녀의 논문 「망명(Exsul)」에서) 지적한 바대로, 모든 망명, 특히 작가들의 망명 ― 즉, 말로 언명된 망명, 따라서 일종의 소통 가능한 경험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흡수 통합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물리적 공간에서 벗어나 있으려 하는, 주변 다른 이들이 정착한 곳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자적인 어떠한 터를 불러내려 하는 결단이다. 그러한 망명은 어떤 특정한 물리적 공간과의 관계나 수많은 물리적 공간들 사이의 대립관계가 아니라 앞서 말한 독자적 공간을 자율적으로 취하는 가운데 정의된다. '결국', 부룩-로즈는 다음처럼 질문 하고 있다. 


모든 시인 혹은 '시적인' (탐험적이고 엄격한) 소설가는 일종의 망명자들이지 않은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서 그들 정신적 눈에 포착된, 그 빛나는 탐스럽게 창조된 소우주, 글쓰기의 노력을 쏟아부을 공간, 이보다는 더 짧은 독서의 공간을 빚어내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유형의 글쓰기는 종종 출판업자와 대중과는 별로 친하지 않으며 최종적으로 고립되고 전혀 사회화되지 않은 창조적 예술이다.


'전혀 사회화되지 않은' 채로 살겠다는 확고한 결단, 통합 불가의 조건하고만 통합하겠다는 동의, 자주 고통과 고뇌를 부르지만 결국엔 승리를 거두는, 옛 것이든 새 것이든 그 터전의 위압적 억압에의 저항, 판결을 내리고 선택할 권리에 대한 완강하기 그지없는 방어,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수용하거나 그 상태를 만들어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망명'을 구성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강조컨대, 이 모든 것들은 물리적 이동성이 아니라 정신적 이동성을 지향하는 태도요 삶의 전략인 것이다.」*


15/08/29


* 지그문트 바우만. (2009). 액체근대. (이일수, Trans.). 도서출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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