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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가속도 놀이 본문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유성처럼 갑자기 내게 툭 하고 떨어진 것들이다. 지난주에는 그렇게 갑자기 나에게 떨어진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가 쓴 <가속화>를 탐독했다. 이 책은 지금의 이 모든 인터넷 문제를 마치 퍼즐 조각을 제자리에 끼워 넣듯 깔끔하게 풀어낸다.
우선 로자는 현대에 이르러 인류가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한다. 현대인의 수명은 중세의 사람들보다 거의 2배 이상 늘었고, 다양한 기계들은 우리를 노동에서 해방시켜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 여유를 제공한다. 물건들은 예전보다 훨씬 빨리 생산되고, 이동 속도는 수백 배 빨라졌으며, 자료 편집 작업은 수천 배나 빨라졌다. 사람들은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가 진행된다면, 넘쳐 나는 자유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1930년에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또한 21세기는 '자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며 기계가 인간에게서 대부분 일을 넘겨받게 될 것이므로 노동자는 '하루 3시간 혹은 주 15시간의 노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도 한가로운 파라다이스에서 왕처럼 살지 못하고 여전히 시간의 노예처럼 살고 있는 걸까? 근세 이상주의자들의 오류는 가속화가 인류 자신을 제외한 외부 환경에서만 진행될 것으로 믿었다는 점이다. 정작 인류 자신에게는 가속화가 진행되지 않을 테니 보호 지역에서 곱게 보호받으며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인류 자신이 그 가속화를 수백 년 동안 진행시킨 장본인이기에, 가속화는 점점 '우리 생활안'으로 밀접하게 파고들었다.
... 거기에 덧붙여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가하는 테러도 있다. 스스로 자신의 유한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짧은 인생에서 모든 것을 쓸어 담기 위해, 또는 우리 자신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는 없다. 지금 이것을 하는 순간 다른 나머지 열 가지 일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끝없는 후회로 자신을 괴롭힌다.」*
15/04/07
* 알렉스 륄레. (2012). 달콤한 로그아웃. (김태정, Trans.). 나무위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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