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돈오(頓悟)는 없고 오직 점수(漸修)만이 있다 본문

명문장, 명구절

돈오(頓悟)는 없고 오직 점수(漸修)만이 있다

모험러
「불교와 선의 초점을 돈오가 아니라 점수 위에 세워야 한다. 돈오를 잊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한 ‘소식’ 하자고, 온 청춘을 다 바쳤는데”를 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진정 우려하고 경계해야 할 욕심이요 아만이다. 인생의 문제는 몰록 깨달음 한 번으로 끝장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러므로 돈오는 없다. 오직 점수만이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점오(漸悟)만이 있다. 그리고 그 점오에 정직해야 한다. 정직해야만 자신의 작은 깨달음이나마 전할 수 있고, 그런 공감대 위에서 불교가 이웃을 향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발언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화두를 아껴두기를 요청한다. 물론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선은 불교사적 발전의 한 국면임을 승인하자는 것, 화두를 과감하게 불교적 해석의 공간에 열어가자는 것, 그리고 방법으로서의 화두는 최상승의 상상근기의 돈오를 위해 ‘선택으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1) 우선 화두가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미약해진 ‘선(禪)’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나는 선의 정체성을 ‘좌선에 축을 둔 자신과 일상의 자각’ 위에 세울 것을 요청한다. 선은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받고 있는 심신에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효과가 있다. 그 효력은 해외에서까지 널리 인증받고 있다. 장점은 또 있다. 그것은 일정한 종교적 도그마의 장애물이 없다. 그것은 유구한 불교정신인 실용주의적 정신의 산물이다. “네가 네 자신이 지우고 환경이 부추긴 심신의 고통과 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라.” 선이 ‘좌선’을 더 종교화시키고, 이에 일상의 지속적 자각을 보태는 체계를 재구축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현대 문명의 고통스런 상황을 구원하는 방법적 중심으로 승격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의 오랜 전통이 발전시키고 정착시킨 수련의 지침들을 적극 채용해야 한다.

2) 다음으로 화두와 돈오의 선이 빠뜨리고 건너띈 ‘계율’을 다시금 살려야 한다. 계율이 없다면 불교는 없다. 그 필요성은 자기 규율과 사회적 규범이 지도력을 잃은 지금 더욱 절실하다. 선도 초기에는 그 실천적 지향으로 인해 율종(律宗)의 사원에서 기거했다. 그것이 돈오의 발전과 더불어 희미해진 것이다. 나는 불교의 출가자 중심의 계율을 과감히 현실에 맞게 고쳐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계율이 너무 높게 엄격하면 삶이 그에 배반하므로 중도를 갖추어야 한다. 재가자에게도 계율이 필요한데, 이 둘 사이를 너무 크게 벌려놓아서도 안 된다.

3) 마지막으로 ‘지혜’이다. 선이 주창한 불립문자의 깃발을 이제는 내릴 때가 되었다. 원효는 진리가 문자와 언설을 떠나 있다고 했지만, 동시에 “구원이 문자와 언설에 의지하고 있다”라고 했다. 언어를 떠나면 불교는 생명력을 잃는다. 아니,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잃어버린 언어를 회복하지 못하면 불교의 미래는 없다.”」*

동의한다. 일확천금과 비슷한 '깨달음'이라는 판타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禪의 근본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14/11/14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