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깨어있지 않으면 공부가 소용 없다 본문
「어떤 사람이 물었다. "정좌를 하든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든 모두 마음을 집중시키려 해야 하는군요."
선생이 말했다. "정좌라는 것은 좌선이나 입정처럼 사념을 끊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수렴시켜 쓸데없는 생각에 이끌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마음은 담연히 아무것도 일삼지 않아서 저절로 '전일專一'하게 된다. 어떤 사태가 발생하여도 사태에 응하여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고 그 사태가 사라지면 다시 담연해진다. 하나의 일에서 둘, 셋으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잡연하여 통일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전일'하게 되겠는가?
'문왕이 온화한 모습으로 궁궐에 계시고 엄숙하게 사당에 계시니 나타나지 않아도 있는 듯하며 싫어함이 없어도 보존하는' 모습을 볼 따름으로, '경敬'이란 바로 이러함을 알 수 있다. 옛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 공부를 하였으므로 청소할 때 손윗 사람에 대한 빗자루의 사용방법이라든가 시의 학습, 음악과 무용의 학습, 악기 연주와 노래 연습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음을 집중시키고자 하였다.
예컨대 활쏘기를 배울 때 마음이 만약 여기에 없다면 어떻게 명중시키겠는가? 말 모는 법을 배울 때도 마음이 거기에 없다면 말을 부릴 수가 없다. 글자나 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그런 것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는 것은 이미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꼭 해야만 한다.
만약 이 공부를 하지 않은 채 책을 읽고 철리를 보고자 하는 것은 마치 집을 지으려 하는데 토대가 없고 기둥을 둘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저 녀석들을 보라. 안달복달하는 마음으로 과연 '도리'와 교류할 수 있을지, 성현의 마음과 완전히 합치할 수 있을지.
지금 마음을 구한다는 것은 바로 기초를 세우기 위함이다. 마음을 갈고 닦아서 주체를 확립시킨 다음에 공부를 하면 틀림없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곳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마음이 뒤섞여 혼란스럽고 통일이 없는 채 공부를 한다면 대체 어디서 결실을 맺을 것인가? 이천 선생이 반드시 '경敬'에서 공부하라고 가르쳤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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