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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저 증인들은 모두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교육자들은 부정 입학을 지시하지 않았고, 정부 관료들은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고, 기업가들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고, 정치인들은 위증 교사를 하지 않았고, 의료인들은 불법 의료 행위를 하지 않았고, 군인은 모든 절차를 준수했다. 아무도 지시하지 않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으며 모두가 법과 질서를 준수하니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은 알아서 좋은 대학에 뽑히고,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세금 없이 상속에 성공하고, 특별 의료 혜택을 받는데 반해, 힘 없고 돈 없는 자들은 서로를 향해 '지겹다'며 알아서 튀는 자의 목소리를 제거하고 스스로 자기검열하다가 심지어 목숨까지 끊는 사회. 아, 우리의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이상향. 물론 이상향은 도래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
「하지만 투표율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진단하는 그렇게 대단한 척도일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국민들이 정치에 '도에 지나치게' 참여하던 사회라는 게 존재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체육관, 음악연주단, 야외활동 동아리 할 것 없이 시민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이 정당 노선을 따라 조직됐다. 이 과열된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투표율은 사소한 선거에서조차 어김없이 80퍼센트 이상을 자랑했고, 독일인들은 공적 영영에서 취하는 모든 행동이 자신의 암묵적인 정치 성향을 반영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졌다. 독일사회가 이렇게 심하게 정치화되어 있었던 덕택에, 집권한 나치는 그런 조직들을 너무나 쉽게 재조직화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를 새삼 새로 정치화할 필요 없이, 이미 위태롭게 정치화된 조직을 '나치화'하기만 하..
「먼저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이념의 기능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 정체나 선거 정책과 관련해서 모델화는 일반적이며, 이런 점은 서구적 근대성을 수용한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줄리앙은 정치 영역에서 모델화의 특수한 기능을 강조한다. 정치 영역에서 정책이나 이념을 제시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상황이라는 변수가 나타나며 따라서 모든 이념이 그대로 실행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념이나 모델의 제시는 적용이 아닌 협의를 위해서다. 모델화는 민주주의의 원리다. 정책 모델을 구상하고 제시하는 것은 정책 모델을 완벽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토론하고 입장을 취하며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모델은 논쟁을 조직하는 데 사용된다. 결국 이념..
「오늘날 우리 모두의 행동을 규정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진짜 권력들은 글로벌한 공간을 흘러 다니는 반면 정치 행위의 제도들은 대체로 땅에 묶여 있다. 즉 예전처럼 지역에 머물러 있다. ... 긴말 필요없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시는 글로벌하게 배태된 문제들을 쏟아 붓는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 도시의 거주민들이나 그들의 선출된 대표들은 점점 더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한 모순들에 대한 해결책을 지역에서 찾는 일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카스텔스가 지적한 역설이, 즉 "점점 더 글로벌한 과정들에 의해 구조화되는 세계 속에서 정치는 점점 더 지역적인 것"이 되는 역설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의미와 정체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즉 내 이웃, 내 공동체, 내 도시, ..
「'일단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멈출 줄 모른다.' 바로 이러한 것이 '상황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경향'(역사 속의 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이다. 당 말엽(9세기 후반)에 발발하였던 농민의 반란이 그 좋은 예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반란이 진정되면 곧장 다른 반란(구보의 반란에 이은 방훈의 반란과 같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향은 '저절로 전개되고 스스로 멈출 수 없게 된다'. 경향은 그 스스로 점진적으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는 법이다. 또 다른 종류의 예로 황후가 국정에 간섭하는 섭정의 경향을 살펴보자. 3세기에 취해졌던 유익한 조치는 이러한 간섭을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섭은 당나라 때 다시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간섭에 단호하게 종지부를 찍었으나, 송나라 시절에는 전보다..
「존경하는 청중 여러분, 10년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다시 한번 이야기합시다. 나 자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그때는 이미 반동의 시대가 시작하였을 것이라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10년 후 그때, 여러분들 중의 많은 사람이, 그리고 솔직히 나 자신도, 바라고 희망했던 것들 중 과연 무엇이 성취되어 있을까요? 아마 '전혀 아무 것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거의 아무 것도 성취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큽니다. 이것이 나를 완전히 좌절시키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내적으로 부담스럽습니다. 아무튼 10년 후 그때,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 자신을 진정한 라고 느끼며 이 혁명이라는 도취상태에 동참하고 있는 자들은 과연 ..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기한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눌려서 그 자신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범우주적 인간사랑과 자비의 위대한 대가들 ― 이들이 나사렛에서 왔든, 아시시에서 왔든 또는 인도의 왕궁에서 왔든 상관없이 ― 은 폭력이라는 정치적 수단을 가지고 있한 적은 없습니다. 그들의 왕국은 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 영향을 끼쳤고 또 아직도 끼치고 있습니다. 플라톤 카라타예브 같은 인물, 도스토예프스키의 성자들과 같은 인물이 아직까지도 이런 대가들의 가장 적절..
「... 모든 종교가 이 문제와 씨름했으며 이 씨름의 결과는 지극히 다양했고 또, 지금까지 서술한 것을 두고 볼 때, 다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만든 조직의 손안에 있는 정당한 폭력이라는 특수한 수단 그 자체가 정치에 관련된 모든 윤리적 문제의 특수성을 규정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폭력이라는 이 특수한 수단과 손을 잡는 자는 ― 그리고 모든 정치가들이 그렇게 합니다 ― 누구든 이 수단이 가져오는 특수한 결과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은 특히 신념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 종교적 투사이건 혁명적 투사이건 마찬가지입니다 ― 의 경우에 그러했습니다. 과감히 현대를 그 예로 살펴봅시다. 이 지상에서 절대적 정의를 폭력에 의거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이 목적을..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경우에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태로운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정적 부작용의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 그리고 어느 선까지,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이 윤리적으로 위태로운 수단과 부작용을 할 수 있는지는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말해줄 수 없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폭력적) 강제력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볼 때 수단과 목적간의 긴장이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여러분은 아래와 같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알고 있듯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짐머발트 계열)은 이미 전쟁 중에 하나의 원칙을..
「... 이와는 달리 를 중시하지 않는 윤리, 그것이 곧 절대윤리입니다. 행위결과의 무시, 바로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 문제를 좀더 상세히 살펴봅시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윤리적으로 지향된 모든 행위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서로 전혀 다른, 화합할 수 없이 대립적인 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에 따라 수행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는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원칙입니다. 물론 이 말이, 신념윤리는 무책임과, 책임윤리는 무신념과 동일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념윤리적 원칙하에서 행동하는가 ―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도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그 결과는 신에게 맡긴다" ― 아니면 책임윤리적 원칙하에서 ― 우리는 우리 행동의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해..
「... 우리는 권력정치 이념을 구현하던 대표적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내적 붕괴과정을 통해 이들의 허풍에 찬 완전히 속 빈 제스처의 이면에 어떠한 내적 나약함과 무력감이 숨겨져 있었는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정치론은 인간행위의 의미에 대한 극도로 빈약하고 얄팍한 오만의 산물로서, 이 오만은 모든 행위, 그러나 특히 정치적 행위가 실제로 내포하고 있는 비극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됩니다. 정치적 행위의 최종 결과가 그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동떨어지거나, 때로는 심지어 정반대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 아니 오히려 일반적 일이며 이것은 모든 역사가 증명해 주는 기본적 사실 ― 여기서는 이 점을 더 상세히 논증할 수는 없습니다만 ―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원래의 의도, 즉 ..
「정치가에게는 주로 아래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 및 이 대의를 명령하는 주체인 신, 또는 데몬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의미하며, 그런 이상 이 열정은 객관적 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열정은 고인이 된 나의 친구 게오르크 짐멜이 라고 부르곤 했던 그런 내적 태도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유형의 러시아 지식인들에게서 (물론 그들 모두는 아닙니다!)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이런 태도는 현재 사람들이 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장식하고 있는 카니발에서 우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로서, 이것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으며 또 어떠한 객관적 책임..
「그러면 이런 제도 전반이 가져다준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것은, 오늘날 영국 국회의원들이, 몇몇 내각 각료들과 그리고 몇몇 주관이 강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개가 규율이 잘 잡힌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독일 제국의회에서는 의원들이 자기 의석의 책상에서 비록 사적 서신이라도 처리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국가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듯이 과시하려고 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이런 제스처나마 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그런 제스처마저 요구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의회 의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는 단지 투표에 참여하고 당을 배반하지 말라는 것일 뿐입니다. 이들은 원내총무가 소집하면 나타나서 내각 또는 야당 당수가 지시하는 것을 수행해야 할 따름입니다. 더더구나 지방의 코커스 기구..
「요즘 '종교의 정치화'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치의 종교화'라는, 그에 병행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이것이 훨씬 더 위험하고 결과도 훨씬 더 유혈이 난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협상과 타협을 요구하는 이해의 갈등(정치의 일용할 양식)은 선과 악 사이의 최후의 대결로 재현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협상해서 합의를 끌어내는 것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그러한 대결에서는 두 적대자 중 오직 한 쪽만 살아남는 것(일신교들의 역치를 이루는 지평)으로 간주합니다. 이 두 경향은 ―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정말 분리 불가능한 샴쌍둥이며, 게다가 각자가 공유한 내적인 악마들을 다른 쌍둥이에게 투사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
「오늘날 유권자의 상상력에 호소할 수 있으며, '좋은 경제 정책'은 '좌파적 경제 정책'일 수 있다고 설득시킬 수 있는 뚜렷하게 '좌파적' 비전이나 신뢰할 만한 강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3의 길'이라는 사유 노선을 따를 때 '좌파적'이라는 것은 우파가 완수하길 원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을 보다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처 하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던 생각, 즉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인과 가족들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무자비한 개인화, 사사화[민영화], 규제 완화라는 생각에 제도적 토대를 놓아준 것은 블레어의 '신노동당'이었죠. 프랑스의 사회적 국가를 해체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프랑스 사회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부와 중부 유럽의 '탈-공산당' 정당들 ―..
「공동선에 대한 물음은 우리 시대의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보다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전망과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비전 없이는 현대 사회의 발전은 멈추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좋은 사회’의 모델에 대한 사유와 논쟁이 더 이상 중요한 공적 의제로 설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한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안적인 세계가 불가능하다는 회의주의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지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하면, 무엇이 문제 지점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일에 대한 생각이 일하는 현장에서 제거될 때 우리는 서로, 또 자기 자신과 분열된다. 사고는 본질적으로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우리가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성적 활동을 통해서다. 인본적 경제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런 만족감을 성취할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지 않는 경제다. 이는 규모에 대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서양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입법·행정·사법 기능의 분리 같은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경제적 권력의 집중은 막지 못했고, 이런 집중이 완전한 인간 번영을 이룩하는 조건(결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를 살피는 데도 무참히 실패했다. 우리가 쇼핑에서 얻는 위안은 그저 우리를 마비시켜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 뿐..
「인간은 사상 주변으로 모여든다. 사상이 문제의 해결과 통제의 환상이라는 생물학적 축복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사상이 초유기체의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인간을 묶어 놓고, 흩어진 개인들을 융합시켜 무서운 힘을 지닌 협력적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우호와 공조라는 위안감을 통해 인간을 밈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하나의 유인책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다른 사회 집단으로부터 힘과 자원을 빼앗으려는 고매한 가면이기도 하다. 그것은 밈, 다시 말해 다른 이의 몸체를 먹고 살찌는 사상의 집합이다. 이데올로기는 패배자를 새로운 서열의 위치로 몰아넣는 횃불로 작용한다. 밈의 거미줄은 밑바닥 사람들의 굴종을 정당화하여 정상의 권세를 지지하고, 때로는 특화된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변화 없는 사회를 만든다. 정치..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가설이 없다면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인간과 사물의 행정적 관리가 있을 뿐이다."* - Geneviève Decrop 14/09/18 * 세르주 라투슈, 에서 재인용. 대안사회 세르주 라투슈
「이상을 외치고 도덕을 선점한 사람들이 정치에 개입하게 될 때, 그 폐단은 상상외로 심각하다. 장사꾼들이 사람들을 등치고,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정도에 비할 수 없다. 지금도 큰 도둑들은 정치와 이념 주변에서 설치지 않던가. 무능한 '군자'가 권력을 쥘 때의 위협과 혼란을 직접 겪은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 "소인은 물정에 익숙하지만, 군자는 사리에 어둡기 쉽다. 사람들은 소인이 나라를 그르친다고 알지만, 군자가 더 큰 병폐를 끼친다는 것을 모른다. 소인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군자가 재주도 덕도 없이, 당면한 현실에 어둡다면 나라에 독을 끼치는 것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소인의 폐단보다 더 심하다."」* 14/08/31 * 한형조, 한형조
"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 - 관자 14/03/21 * 김필수 외 옮김, 에서 봄. 관자
아래는 서구의 정당 정치 상황을 묘사한 글이다. 보수당(우파)과 사회민주주의당(좌파) 사이에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어졌음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당 정치를 대입해 읽어봐도 위화감이 없다. "제3의 길이 등장하면서 정치는 사상과 이념의 문제에서 인물의 문제로 넘어갔다"는 구절이 특히 절묘하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정치는 정치인 개인의 정치로 변해가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그 정치인들은 무엇이 그들의 주의 주장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으면서, 그들에게 무언가의 주의 주장이 있다고 우리들을 설득하려고 광고대행 업체를 고용한다. 오늘날 보수당과 사회민주당은 둘 다 상대편 당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투덜거린다. 이들을 구분하는 근본적인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어느 정책이라도 ..
자기만의 밀폐된 이념 세계에 틀어박힌 공화당과 골수 지지자들을 붙들어 두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민주당.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정책은 선출된 지도자들이 공적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는 정부 기관과 (전혀 이질적인 목표를 가진) 민간 이익 집단이 좌우한다. 미국의 양대 정당 중 한 곳은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자기만의 밀폐된 이념 세계에 틀어박혔다. 이 세계에서는 기후변화가 속임수이고 지출을 삭감하고 세금을 감면하면 경제 문제가 모두 해결되며 이 논리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이슬람교도다. 또 한 정당은 전통적 지지 세력을 붙들어 두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며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중도우파적 태도를 취하고 무능력하며 경제 붕괴에 대처할..
어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공방이다. 나는 이런 공상을 해보았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는 문재인 후보의 보편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문재인 후보 지지자는 이정희 후보의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재벌해체가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이정희 후보 지지자는 김순자 후보의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김순자 후보 지지자는 김소연 후보의 재벌몰수와 주요산업 사회화가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만약 녹색당 후보가 있었다면 김소연 후보 지지자는 녹색당 후보의 탈산업화와 지역공동체주의가 실현 불가능해 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녹색당 후보 지지자는 김소연 후보의 대안이 물질주의적이고 산업주의적이어서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고 느낀다. 김소연 후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