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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H는 돈이 있었기에 옥탑방에서 내려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와 같이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을 부르는 이 여자는 아마 영원히 옥탑방을 내려 지상의 방으로 갈 수 없을 것 같다. 직업도 사는 곳도 붙박힌 것이 아닌 존재, 나 역시 그러하지만 이 여자도 부초와 같은 불쌍한 인생이구나. 어느 물가에 힘없이 일렁이는 부초. 무슨 제목인지는 모르나 여자는 노래를 잘 불렀다. 그것은 물에 잠긴 부초의 뿌리에서 새어나오는 젖은 탄식과도 같았다." - 장정호, 중. http://to.goclassic.co.kr/etc/13943 장정호
사랑의 크기만큼 미움의 크기가 숨어 있다면 그것은 무위(無爲)의 사랑이 아니라 유위(有爲)의 사랑일 게다. 일체의 유위법은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하였는데*, 유위의 사랑, 즉 조건지어진 사랑도 마찬가지일 테지. 「비올렛타가 그 같은 형편이 되었다. 몸이 아닌 정을 주게 된 첫 남자가 알프레도였다. 정이란건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떼어내기가 끔찍히 어려운 것이다. 그렇더라도 남자를 위해선 적어도 겉으로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올렛타는 알프레도가 정나미 떨어질 일을 연출한다. 다른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기는 순식간의 일이다. 사랑이 깊었다면 깊은 만큼 증오도 그만큼 격렬하다. 알프레도는 격렬한 증오를 갖고 비올렛타를 떠난다. 세월이 조금 ..
「김연수의 소설 ‘첫사랑’엔 양품점을 하는 어머니의 가게에 술집에 다니는 혜지누나가 말벗삼아 들락거린다. 사춘기 소년의 눈엔 그 술집 여자 혜지누나는 더럽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시시껄렁한 남자들이 주물러대는 여자가 오물 덩어리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더럽기 그지 없는 혜지누나와 결국 술을 마시게 된다. 첫사랑 소녀에게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며 혜지 누나는 말한다. 내가 공장에 다닐 때 천문학자를 꿈꾸는 남동생이 오늘 부분 일식이 있을테니 꼭 하늘을 쳐다보라고 했어. 그래서 공장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지. 관리자가 왜 하늘을 보고 있느냐고 물었지. 일식을 구경하려고 한다니까 대뜸 따귀를 때리더군. 공순이 주제에 미친 지랄을 다한다고.」* 12/11/25 * 장정호, , http..
친구 셋과 마음이 후련해지는 이야기를 하고 학교로 들어오는 길, 하늘을 올려 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새로웠다. 행복했고, 이것으로 충분했다. "진부한 이야기를 또 하자면, 인생이란 그런 설레고 달콤한 기다림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치 우리 마음의 붉거나 푸르거나 노란색 불꽃을 점점 태우고 난 비명 같고 절규 같은 하얀 불꽃만을 남겨둔 장작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삶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같이 기다림을 결코 놓을 수 없는 운명에 올가미 씌어져있다. ··· 이제 멀고 먼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법을 깨우쳤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하늘의 구름과 푸른 천공과 단풍같은 별자리를 바라본다. 이것이 나의 고도이다."* 12/08/30 * 장정호, , http://blog...
얼마 전에 친구랑 통화하다가 "쌍년"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웃었다. 에서 승민이 서연을 기억하는 방식도 "쌍년"이었다. 극장 관객이 모두 웃었던 기억이 난다. 도 "Bitch"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다. 남자들 마음속엔 '첫사랑'이 아니라 '쌍년'이 하나씩 들어 앉아 있는 걸까?(웃음) 클래식 음악 사이트 에 좋은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시는 장정호라는 분이 있다. 그분이 "쌍년"이라는 제목으로 재미난 글을 하나 올렸다. 그 마지막 부분을 옮겨 본다. "승민이 쌍년 서연을 다시 만난 것은 15년 후의 일이다. 승민은 건축가가 되었고 서연은 이혼녀였다. 늦게 다시 만났지만 그들에겐 이미 깊은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질투도 사랑도 이제 많이 식었다. 그러나 쌍년으로 기억되는 그 날은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서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