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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1982년 여름이었다. 광화문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들이 모여 석방을 자축하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구석자리에 앉아 조용히 설렁탕 국물을 떠넣는 신사가 있었다. 김영삼씨였다. 아무도 그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냉혹한 정치의 계절이었다.」* - 이시영 15/11/24 * 이시영 시집, , 「정치의 계절」 이시영
평일 - 이시영 후농 김상현 선생이 방북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사오십 도짜리 평양소주가 몇순배 돌고 나자 거나해진 후농이 입을 열었다. "우리 전라도 사람들은 말이여, 헐 말이 있으면 우선 참지를 못혀. 그러고 말투가 좀 거칠어뿌러. 그러니 먼저 양해를 구해야겄구먼." 그러고 나서 그가 터뜨린 말이 걸작이었다. "야 이 빨갱이새끼덜아! 육이오 때 말이여, 쳐들어올려면 평일을 골라서 와야제 해필이면 남들이 다 잠든 일요일 새벽을 골라서 올 건 뭐여? 이 순 빨갱이새끼덜 겉으니라구! 그때 우리가 월매나 고생들 했는지 알어?" 동석했던 북측 인사들은 물론 함께 간 남측 의원들도 후농의 이 느닷없는 일갈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크게 당황했다고 하는데, 정작 후농 자신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주앉은 리종혁 아태..
"한번 불려간 것들은 다시는 오지 않는 것인가 내 등 두드리며 여기 서서 기다려라 하고 간 바람은 산 넘고 물 건너가 다시 오지 않는다 대수풀에 머문 구름에게 물어도 구름 위에 날개 접은 솔개에게 물어도 바람이 한번 간 곳 알지 못한다" - 이시영, 중 일부.* 13/04/29 * 이시영 시집, 에서 봄. 이시영 시인
시 - 이시영 화살 하나가 공중을 가르고 과녁에 박혀 전신을 떨 듯이 나는 나의 언어가 바람 속을 뚫고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마구 떨리면서 깊어졌으면 좋겠다 불씨처럼 아니 온몸의 사랑의 첫 발성처럼 13/03/07 * 이시영 시집, 에서 봄.
'세상은 이러저러하며, 또한 이러저러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논문과 책이 나날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론이 쌓이고 정교해지는 만큼 세상이 좋아질 것 같았으면, 세상은 벌써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언제 - 이시영* 시인이란,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주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언제 나의 입김으로 더운 꽃 한 송이 피워낸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 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손길로 광원(曠原)을 거쳐서 내게 달려온 고독한 바람의 잔등을 잠재운 적 있는가 쓰다듬은 적 있는가 13/01/28 * 시집, 에 수록.
이시영 아저씨의 시, 저 머나먼 별의 별자리 어딘가에서 숨 죽이고 납작 엎드려 있을. 이슬 - 이시영* 나의 시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지상의 어느 불안한 영혼 곁에 있어야 하겠지만 나의 시는 때로 공중을 차고 날아 머나먼 별의 별자리에 가 박혀 오십억 광년 숨소리도 불빛도 없이 엎드려 있어라 그러면 이슬이 내리기는 내릴 것이다 13/01/14 * 이시영 시집, 에서 봄.
소주 한잔 - 이시영 오랜 수배생활 끝에 붙들린 지하형이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갔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구둣발 소리도 요란히 수십명의 수사관들이 계단을 내려와 들이닥치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형이 맞은편의 수사 책임자인 듯한 사람에게 말했다. "소주 한잔 주시오! 손님에게 그 정도의 예의는 지킬 줄 알아야지!" 구두 발짝 소리들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그 책임자가 말했다. "역시 김지하는 김지하다! 얘들아, 손님에게 소주 한잔 정중히 올려라." 12/11/27 * 이시영 시집, 중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공습 엿새째. 지난 엿새간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모두 87명이며, 이 중 절반이 민간인이다. 지난 2008년 22일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는 1400명이 숨졌고,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11월 23일 오후 팔레스타인 가지지구 북부 자발랴. 몸에 검은 폭탄띠를 두른 여성이 이스라엘 군부대를 향해 돌진하다 정지신호인 섬광 수류탄을 맞고 자폭했다. 이스라엘군 세 명이 다쳤다. 여성의 이름은 파티마 오마르 마무드 날 나자르. 올해 64세. 손자 한 명은 거리에서 이스라엘군과 대치하다 숨졌고 또다른 십대 손자는 총격으로 다리를 잃었다. 남편은 일년 전 이스라엘군의 감옥에서 숨졌으며 아들 다섯은 아버지가 갇혔던 바로 그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군은 보복으로 그의 집마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