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이(理) (9)
모험러의 책방
헤겔 등은 동양철학을 속된 말로 개무시하지만, 조선의 천재 율곡 이이는 화이트헤드가 주장하는 이른바 '과정 철학', '유기체 철학'의 아이디어를 1500년대에 이미 선취하고 있었다. 불가나 도가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신유학의 이(理) 개념은 과정 철학의 '영원 대상'(eternal object)에, 기(氣) 개념은 '사실 존재'(actual entity)에 비교될 수 있다. 주자와 퇴계는 이(理)에 작위성이 있다고 본데 대하여, 율곡은 없다고 보았다. 퇴계의 이기호발론과 율곡의 기발이승론은 이런 점에서 서로 대립된다고 할 수 있다. 퇴계는 이(理)와 기(氣)에 효능인이 있다고 본 데 대하여 율곡은 그것이 기(氣)에만 있지 이(理)에는 없다고 본다. 플라톤의 경우는 이데아만이 작위성과 효능인이 있지 사..
「리(理) 한 글자에 의지해 천하의 일을 결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을 오로지 리에 의지해 결단하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지지. 위의 덕이 박절하면 아래에는 반드시 상처를 입어 사람들도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단다. 모름지기 장자長者의 기상을 가져야 하는 것이야. 악은 숨겨 주고 선은 드러내 주며, 남의 좋은 점은 완성해 주고 남의 악은 이루지 못하게 하며, 자신 스스로는 무겁게 책하면서 남은 가볍게 탓하는 것, 이것이 모두 장자의 기상이지. 어진 사람만이 잘할 수 있는 것이지, 자잘한 소인 유학자들이 미칠 수 있는 지경이 아니야. 내가 『통감찬요』 등의 책을 보니 인물 비평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에 털끝만큼도 가차 없어 엄하다고 할 만하더구나. 하지만 결단이..
이토 진사이는 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며 주자학이 리(理)라는 글자에만 집착해 "잔인하고 각박한 마음이 많아지고 관대하고 인후한 마음은 적어"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너그러운 성인의 기상이 없어 "자기 지키기가 너무 엄격하고 남 꾸짖기가 너무 심해, 폐부에까지 스며들고 골수에까지 젖어들어 마침내는 각박한 무리가 되고 말았"다고 슬퍼하고 있다. 통쾌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토 진사이 역시 "공자는 최상의, 지극한, 우주 제일의 성인이시며 『논어』는 최상의, 지극한,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말하며, 노자와 붓다의 가르침은 오직 허무와 적멸만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미혹시키는 이단으로 단죄하고 공자와 맹자가 제시한 기준은 만고불변에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 어찌 이리 각박하고 좁은가. 또한 공자가 ..
이학의 재발견, 좋다. 그러나 우리는 이理(초월, 절대, 신 등등)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기서 이를 잡든 말든) 일갈한 도올 김용옥에 나는 더 동의한다. 이성은 몸의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삶의 목적은 순결하고 고상한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오욕칠정을 가진 몸으로부터 자득(自得)해야 한다. 즉,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근대'는 기학의 축 위에 서 있다. 도저한 근대화가 진척된 지금에도, 그러나 재래의 이학의 관성은 완강하다. 그 기억의 흔적이 기학의 철저화와 전면화로서의 지구촌화나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제약하고 있다. 그 갈등은 지금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기학의 사고를 넘어 이학의 재발견이 한창이다. 2003년 하버드에서 열린 다산학 국제학술회의에서 뚜웨..
「(주자의 경전 해석에 일자일구도 손을 못 대게 하고, 소소한 상례의 기간과 절차를 두고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이고, 이 입법을 무시한 다른 인종과 문화는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과부에게 재가를 하기 보다는 절개와 의리를 강요하는 임진왜란 이후 노론이 주도하는 주자학 문화에 대한 각주에서) 왜 조선 후기 그 예가 문제였을까. 나는 어느 날 니체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거세나 근절 같은 것은 의지가 박약하고 퇴락하여, 도저히 절도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느라고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수단이다. ... 그러한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퇴락한 사람들이다. ... 성직자와 철학자들의 역사, 그리고 예술가들의 역사를 조사해보라. 관능에 대한 가장 극심한 독설..
「모더니티의 인간학적 규정이 합리성(Rationality)이라고 한다면, 플레타르키아(민본성民本性)의 인간학적 규정은 합정리성(Reasonableness)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합리성은 인간의 이성(Reason)을 감정이나 현상론적 감각으로부터 분리시키지만, 합정리성은 인간의 이성을 칠정(七情)이라는 감정의 한 측면으로 귀속시킨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느낌(Feeling)으로 일원화시킨다. 인간의 수학적 계산능력이라는 것도 인간의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고도화된 계산능력이라도 그것은 의식의 현상이며, 의식은 느낌의 고도화에서 발생하는 사태이다. 그것이 토톨로기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도(道)는 기의 유행을 형용하는 것이고, 덕(德)은 기의 충양(充養)을 펴는 것이고, 인(仁)은 인도의 기를 조화하는 것이고, 의(義)는 사물의 기를 마름질하는 것이며, 성(性)은 곧 신기에서 품수(稟受)한 것이고, 이(理)는 곧 신기에서 추측한 것이다."* 13/10/10 * 혜강 최한기, 에서 봄. 혜강 최한기 2012/06/28 - 마음이 취하는 모습들
"기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우리 몸의 감응 관계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인식론이 아니라 감응론인 것이죠. 쉽게 말하면 기가 표상하는 세계는 느낌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이(理)를 중심으로 하는 사유는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면이 강합니다. 구체성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은 역사적인 구체성이지요. 그래서인지 理 중심의 사유를 했던 사람들의 언어는 딱딱한 편입니다. 그러나 기론자들은 문학적입니다. 『노자』, 『장자』, 『회남자』 등 기론적 사유를 견인해온 많은 텍스트들은 상대적으로 은유적이고, 문학적입니다. 理를 추구하는 텍스트들에 비해서 기를 추구하는 텍스트들이 훨씬 더 문학적이고 부드럽고 은유적이란 말이죠."* - 김시천(철학자) 언어만 딱딱한 것이 아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스승이었던 정이는 리..
"어떻게 제 마음이 빛을 발하게 만들 수 있겠나이까?" ― 반성하여라. "어떻게 반성합니까? 반성하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 반성한다는 것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너의 몸을 깨닫는 것이다. "나의 몸을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이오니이까?" ― 너의 몸에 구현되어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중략) "무언가 알쏭달송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뭔 말인지 명확히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이 기회에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인간은 몸이다. ... "인간은 몸이다"라는 이 한 명제를 우리는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몸은 인간의 전부다. 노자는 인간의 전부가 몸이라고 했다. 몸이 없으면 인간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