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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요컨대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의 실현가능성을 뒷받침해줄 그 어떤 확실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그 일이 성공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전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희망하기를 멈추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다고 하지만, 글쎄요, 우리가 삶에서 실천하는 것들 대부분이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또한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실패나 패배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실패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하죠. 또한 이것은 희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도 우리는 무언가 희망해야 합니다. 만..
『논어』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한 종래의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으나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해 배운다." 새 해석: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배웠으나 요즈음의 배우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배운다." 「공안국 이래의 모든 해석들이 爲人(위인)을 표현된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남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남을 위하여 배우는" 경향을 개탄하였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논어 안에 널브러져 있다. 논어는 도처에서 타인에 대한 어설픈 베풂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하는 말로..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서 일생 동안 그것을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논어, 위영공/24)* 위 단편의 서(恕)를 대부분의 번역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라" 하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저자 이수태는 이러한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아라"를 진심으로 바라지도 않으면서 남에게 베풀려 들지 말라는 뉘앙스로 해석한다. 직설적 표현으로 바꾸면 "자신이 (능동적으로) 하고자 하는 바만을 남에게 베풀어라" 혹은 "너 스스로 하고자 하여 (그것을 통해) 남에게도 무언가를 베풀어라"라는 뜻이 된다. 「이 위대한 원칙은 누..
자공이 말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떠합니까? 가히 어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어진 정도이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니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 문제만은 부심했었다. 실로 어진 자는 스스로 서기를 바라서 남을 세우고 스스로 통달하기를 바라서 남을 통달시키며 가까운 데서 능히 예(例)를 드니 그것이 어짊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논어, 옹야/30) 「바로 이 말이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위영공/24)의 진정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요순도 부심했던 바,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과제의 실행 요체는 단지 스스로 서기를 바라고 스스로 통달하기..
「유교에서의 합일은 다시 말하지만 '자신과의 대화'이고, 이것의 무대는 '일상의 생활'을 떠나지 않는다. 조지프 니덤은 도가가 "과학과 모순되지 않은 유일한 신비주의"라고 칭탄한 바 있다. 나는 유학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모순되지 않은 유일한 신비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유교는 두 극단을 피해 중용을 기획했다. 의미는 오직 생활 속의 규율과 일상적 습관에 있다. 바로 그 신기할 것도 없고, 통속적인 삶의 자잘한 현장이 의미가 구현되는 성소이다. "중용의 도는 부부에서 출발한다." 가장 비근하고 친근한 기거와 교제, 일과 놀이를 의미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중용』은 말한다.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을 사양할 수도 있고, 흰 칼날을 맨발로 밟기는 쉬워도 중용을 지키기는 정말 어렵다."..
「유교만의 독특한 사유가 있다. 유학은 철상철하 ‘자기’를 문제 삼는다. 유학은 자기 너머를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를 구성하는 세계는 그와 맺고 있는 구체적 관계의 총칭을 의미한다. 그것은 가족관계일 수도 있고, 교유관계일 수도 있고, 몸담고 있는 직장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유학의 ‘자기’는 세계와 절연된 유폐된 자아가 아니면서, 그렇다고 전체나 보편에 자신을 헌납한 유리된 자아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유학은 내면성과 외면성을 이분화하지 않고 ‘구체성’에서 통합한다. 유학은 이 구체적 관계에서 내가 나를 자각적으로 의미화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로 하여 결과되는 보상은 이차적이다. 그는 그것이 자기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일에 몰두한다. 그것뿐이다. 그는 “인(仁)이 ..
「"학문의 요체를 여쭙니다." 대답하였다. "학문의 요체는 오직 자신에게 돌이켜 찾는 데 있을 뿐이다. 『중용』에,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 활을 쏘아 과녁 정곡에 맞지 않으면 잘못을 자기에게 돌이켜 찾는다'라 하였고,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어진 사람은 행동이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사람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 이후에 활을 쏘아, 쏜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돌이켜 구할 뿐이다'라고 하셨으니 평생토록 사용해도 다 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게 이것이지. 또 말씀하시길, '남을 사랑했는데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을 돌이켜 보고, 잘 다스리려는데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돌이켜 보고, 예로 잘 대해 주는데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
"자신 안에 있는 더러움은 공격하고 남의 더러움은 공격하지 않는 것이 사특함을 없애는 것 아니겠는가?" - 공자 "자신을 책망하는 자는 마땅히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잘못할 리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을 탓하지 않는 데 이른 학문이 지극한 학문이다."* - 장재 14/11/03 * 이토 진사이, 논어 장재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절실한 문제를 궁구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독서는 이미 부차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 속에 '도리'가 완비되어 있으므로 밖에서 더 채워야 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성인이 반드시 책을 읽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이 도리가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성인 자신이 일찍이 경험하였던 것이다.」* - 주희 14/10/20 * 미우라 구니오, 주희 학문
수신(修身) 혹은 수양(修養)을 철학의 중심 과제로 늘 꽉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동양의 종교나 철학 전통의 위대함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형이상학은 단지 지식으로 알아할 과제가 아니라 몸으로 증득하고 체험하고 검증해야 할 과제였다. 공자가 말했듯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로다. 「'철학'의 외양을 한 필로소피가 등장함으로써 전통유학이나 불교는 때 아니게 정체성을 의심 받고, 정당성을 도전 받게 되었다. 논리와 체계로 무장한 철학은 묻는다. "얘야, 유교는 일상의 조언들로 가득 차 있던데, 그건 철학이냐, 잠언집이냐." 그리고 유일신의 초월성을 등에 업은 '종교'는 묻는다. "불교야, 너는 무신론 같기도 하고, 다신론 같기도 한데, 너를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
「사실 사회가 저절로 저절로 복합성이 높아지고 사람들이 저절로 점차 한계를 초월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엔트로피, 질서의 발밑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관성력을 꺽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진화 과정의 상당 기간 동안 유기체가 진화한 까닭은 스스로 의도해서가 아니라 외부 힘과 경쟁과 사건이 유기체를 그렇게 몰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삶의 질이 영적 불길을 따라 솟구쳐 올라가던 순간, 플로우와 복합성이 하루하루에 녹아 있던 순간은 우연이 아니었다. 문제에 창의적으로 대응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복합성이 증진되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한 가지 해답은 단순하다. 우리가 각자 자아를 개선하고, 현존하는 체제 내에서 더 나은 사회를 ..
'당신은 자기만 생각하잖아! 자고로 학문하는 사람은 민중을 사랑하고 널리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지!'라는 비판에, 이탁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이 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다른 사람과 차이 나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고, 나 역시 그렇고, 당신 또한 그렇습니다. 편안하게 살기 위해 집 구하러 다니고, 직장을 잡으려고 공부를 하고, 지위를 높여보고자 일을 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기 위해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날마다 하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계획하고 염려하는 것일 뿐, 남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꼭 입을 열어 학문을 논할 때만 '너는 자기를 위하지 말아야 하고 타인을 위해야 한다'고 합니다. '너는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