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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연습은 단지 달인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무능도 연습될 수 있다. 나쁜 버릇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연습하는 동물로서 인간은 "가장 나쁜 것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의심할 바 없이 자명한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모두 개별적, 집단적 혹은 순차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연습 또는 고행 덕분이다. 슬로터다이크는 그리스어 개념인 '아스케시스(askesis=연습, 훈련)'의 본래 의미를 살려 '고행Askes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결과 "고행적인 것으로 밝혀진 세상에서는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혹은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자신으로부터 아무것도, 혹은 조금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점점 더 확연해진다". 슬로터다이크는 "사람들 사..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라,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공산주의 ― 한때 저는 '사회주의의 성마른 동생'으로 묘사했지요 ― 는 제게는 강제로 '자유의 왕국'으로 '지름길'로 달려가려는 기획을 의미합니다. ― 아무리 말로는 매력적이고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할지 몰라도 현실에서 적용되면 그것은 자유의 공동묘지로 향하는, 실제로 실천되었을 때는 노예제로 향하는 지름길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강제적인 방식의 실천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지름길이라는 생각 자체가 자유와는 정반대되니까요. 그리고 강제는 자가-추진적이며, 자기-강화적인 실천입니다. 일단 시작되면 강제당한 자들이 순종하고 침묵하도록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온갖 짓을 자행하죠. 일단 인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선언되면(한때 루..
「오백 년 전에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가 말했듯이, 온갖 종류의 사회적 불평등은 모두 사회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뉜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장 열렬히 갖고 싶어하는 대상, 바꿔 말하면 못 가지게 될 경우에 가장 분개하는 대상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유럽에서는 이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많은 곳들에서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극히 드물긴 하지만 부족 간 전쟁이나 원주민들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는 오늘날에도, 못 가진 자와 가진 자를 싸움으로 이끌고 간 것은 주로 빵이나 쌀의 항구적인 공급 부족이었다. 하지만 신, 과학, 기술 그리고/혹은 합리적인 정치적 프로젝트들 덕택에,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분열이 완전히 종식되었다는..
「경쟁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경쟁이 초래한 사회적 불평들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공공연히 비난받는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공적인 평가에 동의해 자신들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모욕에 상처까지 더해지고, 불행으로 입은 상처에 비난의 소금까지 뿌려지는 것이다. 2011년 영국 토트넘에서 일어난 실패한/실격된 소비자들의 폭동처럼, 때로는 축적된 분노가 폭발해 일시적인 파괴의 광란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는 소비주의 사회의 기본 교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소비자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궁핍한 자들의 필사적인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 행복 추구는 곧 쇼핑이라는 것, 행복은 상점 진열대에서 찾아야 하고 상품 진열대에서 발견되기를..
「지금까지 이 책은 성공으로 가는 몇 가지 길을 제시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과제로 요약할 수 있다. 21세기의 경제학은 - 현실을 더 많이 보고 논리적 정확성에는 덜 집중해야 한다. - 형평성을 더 많이 생각하고 효율성은 덜 중시해야 한다. - 더 많이 겸손하고 덜 자만해야 한다. 다른 사회과학에서는 사라지고 있는 수학적 논리 정연함이 경제학에서는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지속적으로 틀리는 이론은 가치가 없다. 경제학은 최근 수십 년간 경제 분석의 중심 화두를 제공해온 한없이 합리적이고 선견지명이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인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지저분하고 복잡한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요약하고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들에는 여전히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재화시장의 미시경제 분석과 연관된 요소들이..
"1%와 99%의 전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회는 로마제국처럼 공멸할 수밖에 없다. 사이언스는 그 해법을 탐구하러 불평등의 기원이 자리한 수렵사회를 다시 찾았다. 아프리카 주호안시·쿵족(族)은 척박한 칼라하리 사막에서도 수천 년간 종족을 보존했다. 비결은 결벽증에 가까운 평등 추구였다. 잡은 동물은 무조건 똑같이 나눈다. 사냥감을 잡는 데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탐욕적인 1%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게 종족의 사냥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길이었다. 생존이냐, 멸족이냐를 걸고 수대에 걸쳐 쌓은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불평등 해결을 위해선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다만 사이언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잊지 않았다. "지식기반 사회로 이동하면서 부동산이나 주식이 아..
「현재 우리는 경제 성장을 동반하는 성장 사회에서 경제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성장 사회로 이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1974년에 앙드레 고르가 이미 언급했듯이, "경제 성장과 생산의 퇴보는 다른 사회 체제에서는 좋은 일(예를 들어, 더 적은 자동차, 더 적은 소음, 더 깨끗한 공기, 더 짧은 노동 시간 등)일지 몰라도 현재의 체제에서는 실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제품은 특권 계급에게는 끊임없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인 반면 대중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사치품이 될 것이다. 불평등이 확산될 것이며 빈곤층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부유층은 더 부유해질 것이다." 고르는 또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경제 성장의 지지자들은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 옳다. 그것은 현재..
「간단히 말해, 북유럽 사람들의 승리는 우월한 사업 개념이라든가 자연스러운 산업 경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물론 그들의 임금이 낮아서 유리했던 점은 있었습니다). 북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과는 더욱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단지 이전의 승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이 개입되었던 것도 물론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레닌은 이 폭력적인 세계 분할을 규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폭력이나 세계 분할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처한 현실도 여전히 그렇지 않습니까?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나 중심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수직적 위계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역사가의 눈으로 볼 때 이 위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역사가로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회를 보고 또 보아도 전부 나름의 위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회들의 위계를 살펴보면, 결국 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특권과 권력을 누립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늘 그러한 위계가 있었습니다. 13세기 베네치아나 구체제하의 유럽에도 있었고, 티에르 총리가 활동하던 프랑스나 1936년의 프랑스에도 있었습니다. 이때 프랑스 대중의 구호는 '200개 가문'의 권력을 배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 일본에도, 중국과 오스만 제국, 인도에도 수직적 위계는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역시 위계가 존재합니다. 미국에서도 자본주의는 없던 사회적 위계를 새로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