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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1953년 9월에 필라데피아에서 열린 세계 과학소설 대회에서 과학소설 작가 테드(시어도어) 스터전은 이렇게 연설했다. 사람들은 미스터리 소설을 이야기할 때 『몰타의 매』와 『깊은 잠』을 예로 듭니다. 서부물을 이야기할 때는 『서쪽 길』과 『셰인』을 언급하죠. 하지만 과학소설이 화제에 오르면 "그 버크 로저슨가 뭔가 하는 거"라고 부르거나 "과학소설의 90퍼센트가 쓰레기야"라고 말합니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과학소설의 90퍼센트는 쓰레기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이고, 쓰레기가 아닌 10퍼센트의 과학소설은 어떤 소설 못지않게 또는 더 훌륭합니다. 스터전 법칙을 덜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뭐든지 90퍼센트는 똥이다'가 될 것이다. 분자생물학 실험의 90퍼센트, 시의 90퍼센트..
「그(아인슈타인)는 초보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항에 대한 재검토에서 출발하여 중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초등대수나 기하학을 이용하여 상대성이론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공식을 이끌어낸다. 그 설명은 출발점이 되는 전제에서부터 지향하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양자를 잇는 최단 코스를 거치는 참으로 판명하면서도 설득력 넘치는 논지로 독자를 목표점으로 이끌고 간다. 이 논문은 물리학 논문의 모범이며, 이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반드시 일독해야 하리라고 본다. 이는 과학논문으로서는 최고의 걸작이며, 그 논지 전개의 아름다움은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 우치야마 다쓰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머리말 중 14/06/05 * 다치바나 다카시, 에서 봄. 2013/08/04 - ..
도올 선생은 고전번역을 박사학위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적극 동의할 뿐 아니라, 인문학 분야를 넘어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박사학위까지는 아닐지라도 번역을 중히 여기는 정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계는 마치 갈증에 미친 흡혈귀마냥 외친다. "새로움, 새로움을 다오!" 그러나 새로움은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들이나 (간신히) 개척하는 경지이지(일부 분야 제외), 학문의 길을 이제 막 걷기 시작했거나 얼마 길을 못 간 초짜들이 개척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보자, 백날 새로움 타령하는 학계에서, 정말 새로운 논문이 쏟아지고 있는가? 거의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심지어 논문을 쓴 본인조차 다시는 자기인용하지 않는 논문들, 좀 솔직하게 말해서 쓰레기같은 논문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을..
「‘~에 관한 논문’을 쓰려면 지금까지 축적된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 같은 연구들을 파헤쳐야 한다. 이류, 삼류 논문을 계속 읽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고 나서야 마침내 ‘칸트의 ○○○에 관해’라는 논문을 자비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피땀 어린 노력은 대부분 단순한 ‘정리’에 불과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자. 설령 논문이 미미하나마 새바람을 일으킨다고 해도 이미 어마어마한 시간을 칸트 연구에 쏟아부었고, 두뇌는 ‘칸트화’되었으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칸트 업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점점 더 좁은 포장마차에서 칸트 부침개나 칸트 만두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칸트 학자는 대부분 - 쓸모없는 논문이나 메모까지 포함해서 - 칸트가 쓴 책 전부와 칸트와 관..
녹색평론 선집을 정독한 후, 소농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해왔다. 오늘 우드하우스의 논문 를 읽었다. 역시 세상에 만만한 건 하나도 없다. 문제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비농업 소득이 매우 높은 곳에서나 선택의 한 형태로 자급을 위한 파트타임 농사일이 가능하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바는, 산업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나 노동집약적인 소규모 생산이 다양한 소득 원천의 일부로써 한 역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가 더 높은 다른 활동이 있는 경우에만 그 '농업'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 소득을 견딜 수 있다.」* 12/10/22 * Philip Woodhouse, 에서 봄. 관련 글 보기 2012/12/02 - 인류의 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