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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만이 타인의 껍질 밑에서 제1의 천성을 길러낸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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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만이 타인의 껍질 밑에서 제1의 천성을 길러낸다

모험러

「니체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게으름이나 순응주의 때문에 자신이 가진 삶의 과업을 회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 또는 자신이 될 수 있는 모습이 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볼 때, 본질은 실존에 선행한다. 비록 그 본질은 현실화되어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각자는 다른 어떤 비슷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일한 탄생에 속한다. 그러나 역설적에게도 이러한 유일성은 우리가 '나'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자마자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개체적 동일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우리의 자아는 실상 잡다한 작용들의 집합일 뿐이다. 열렬히 애써 얻어진 모방의 결과일 뿐이란 말이다. 우리 안에 본래적이며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 우리의 할아버지들과 아버지들이 느끼고, 바라고, 생각했던 것의 창백한 반영일 뿐이다.


심지어 우리는 자신의 길을 찾기도 전에 자신의 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의 흔적을 고분고분 따라가면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음을 자축하면 된다. 그러나 니체가 유난히 좋아했던 크롬웰(Cromwell)의 말을 빌리자면, 결국 더 멀리 가는 자는 헤매는 자다. 


"어느 누구도 네게 삶의 강을 건너게 해줄 다리를 세워 주지 않는다. 오로지 너 혼자만이 그럴 수 있다. 물론 강을 건너게 해줄 작은 길이나 다리, 반신(半神)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너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한다. 너 자신을 저당 잡히고 너 자신을 잃어버려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너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그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묻지 말고 그저 걸어가라. '사람은 그의 길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 가장 높이 분기한다'라는 격언을 말한 사람은 누구였던가?'[니체, 『반시대적 고찰』, III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그러므로 언젠가 다시 길을 찾고 싶다면, 먼저 길을 잃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자신을 찾으려면, 먼저 가장 익숙한 확실성들과 좌표들을 버려야만 하고, 포근한 '우리 집'을 떠나야만 한다. 임제 선사의 훌륭한 말씀에 따르면, 자유로워지고 싶은 정신은 머물러 있지 않는 인간이다. 니체는 보통 이 자유로워지고 싶은 정신을 구속받지 않는 여행자, 방랑자, 무국적자라고 표현한다. 모든 안식처는 감옥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알몸으로 돌아가지 전에 자신의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상속된 가치 판단들이라는 제2의 천성에 의해 가려졌던 제1의 천성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원본을 얻는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교육을 통해 우리는 먼저 제2의 천성을 획득한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성숙했다든가 성년에 달했다든가 쓸모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갖고 있는 셈이다. 몇몇 소수만이 그들의 껍질 밑에서 제1의 천성이 성숙하게 된 어느 날 뱀처럼 이 허물을 벗어던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제1의 천성의 싹은 말라죽는다."[니체, 『아침놀』]


따라서 대개가 자기는 참된 길을 가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길을 잘못 들기 마련이다. 자기에게 제시된 삶과 사유의 양식들을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지만, 자기가 자유롭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원치 않게 상속자가 된 자들의 속성이다. 굳건한 관례는 정신의 예속을 망각하게 만든다. 지배적인 가치들의 무게에 깔린 낙타처럼. 비굴한 정신이 부정하는 사자로 변하는 것은 어떤 제한된 동일성 안에 우리를 가두고 진정한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이고 본능적인 반란을 가리킨다. 니체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어남 혹은 지진에 비유했던 이 "위대한 해방"은 확실하지만 막연한 의지를 따른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자유에 대한 이 막연하고도 저항할 수 없는 본능이 먼저 와서 모든 연쇄들과 조건들로부터 개체를 떼어내는 것이다.」*


15/11/26


*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 & 다미앙 막도날드. (2012). 유럽의 붓다, 니체. (강희경, Trans.). 파주: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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