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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에서 세계정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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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안에서 정신은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한정적인 본성을 지닌 개별자, 즉 민족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와 관계가 있는 정신은 바로 민족의 정신이다." 정신이 보편적 역사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고 이러한 자기의식을 소유한 가운데 서서히 발전해 나가는 것은 바로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구체적 형태를 통해서다. 정신의 이러한 자기의식은 세계 안에서 한 민족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로부터 만들어 내는 의식의 형태로 구체화된다. 한 민족의 이러한 자기실현의 단계에는 필연적으로 쇠퇴와 소멸의 시기가 뒤따른다. 그리고는 새로운 민족이 나타나 이전 민족의 자리를 차지한다.


정신의 활동이 활기를 잃게 되면, 즉 어떤 특정한 민족 안에서 자기 목적을 실현하고 그 열매를 누린 뒤에 정신은 그 민족을 버리고 다른 민족을 향해 떠나간다. 헤겔이 이러한 경우를 위해 사용하는 사랑의 비유를 살펴보자. 어떤 사물은 그것을 둘러싼 신비감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 마지막 신비마저 벗겨지면 그를 떠나고자 하는 욕구 외에는 아무런 욕구도 더 이상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면 정신이 자신의 욕구를 성취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그의 활동에는 아무런 생기도 찾아볼 수가 없고 그의 영혼의 본질적인 부분은 활력을 잃게 된다. 그의 행위는 그의 더 고상한 관심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아직도 내게 감춰진 채로 남아 있고 아직 내가 도달하지 못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에만 나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민족이 완전히 형태를 갖추고 그 목표를 실현하게 되면 그를 둘러싼 근원적인 관심사는 사라진다. 한 민족의 정신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자다. 그것이 그 자체로 꽃을 피우고 강해지고 나면 쇠퇴하여 사라진다."


한 민족의 정신이 사라지면 그 특정한 형태는 해체되지만 그보더 더 보편적인 정신의 한 형태인 세계정신이 등장하게 된다. "어떤 특정한 민족의 특정한 정신은 쇠약해져 사라질 수 있지만 그것은 세계정신의 발전 과정 중 한 단계를 구성하는데, 이러한 세계정신은 사라질 수가 없다." 세계정신, 즉 보편적 정신은 ― 한 민족의 한정적인 형태 안에서는 ― 가장 높은 절대자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자기의식을 지닌 정신이다. "새롭게 규정된 민족정신은 그때마다 세계정신이 자기의식과 자유를 쟁취해 나가는 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 준다." 그럼에도 세계정신을 구현하여 세계사를 지배하게 되는 민족은 "오직 한 번만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고 난 뒤 갑자기 다른 민족의 지배를 당하게 된 민족들은 그 후로는 세계사적으로 아무런 권리도 지니지 못한 채 남아 있게 되며 더 이상 역사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조차도 보이지 않게 된다고 헤겔은 주장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현대 유럽의 운명은 의심의 여지없이 광범위한 재검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15/11/07


* 올리비아 비앙키, & 에두아르 바리보. (2014). 헤겔의 눈물. (김동훈, Trans.). 파주: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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