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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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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가 학문을 통해 세상을 바꿔보려는 '강박관념'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김경만 자신이 학문세계에서 더 나은 상징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과 상징폭력을 피할 수 없었듯이, 연구자의 이론은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서로 격렬히 충돌하는 힘들 사이의 투쟁에서 어떠한 경우든 자유로울 수 없다. 김경만의 말대로 완벽한 해방의 상태는 그려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더 낫게 설명하는 새로운 스토리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그 중 어느 스토리가 앞으로 선택되고 펼쳐지고 변형될지 예측할 수 없다. 진화에서 어떤 변이가 종의 생존과 번영에 유리할지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새로움에의 시도는 멈출 수 없으며, 멈춰지지도 않을 것이다.


「『담론과 해방』은 행위자들이 구체적인 맥락에서 행위와 발화를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보이는' 내적 성찰성에 대한 민속방법론의 논의에서 출발해, 내적 성찰성의 인식론적 한계를 이론적 비판으로 극복하고, 그 결과 행위자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제약과 억압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고 역설하는 기든스, 하버마스, 부르디외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시 말해, 행위자들의 세계에 대한 기든스, 부르디외, 하버마스의 이론적 비판은 그 주장과 달리, 내적 성찰성의 '정합성'을 깨트릴 만한 비판적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담론과 해방』의 핵심적인 주장이었다. 아울러 나는 이 책 마지막 장에서 리처드 로티의 사회철학을 개괄하고 그것의 맹점을 비판했다. 로티는 자신의 저작에서 기든스나 부르디외를 전혀 논의하지 않았지만, 철학자 하버마스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치열한 논쟁을 주고받았다.


로티는 하버마스, 기든스, 부르디와와 달리 '이론적 비판'의 효과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고, 오히려 일상에서 우리와 더 가까운 문학이 현재와 다른 미래를 그려낼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어떤 이론체계를 구축하고 그것으로써 행위자들의 생활 세계를 비판하는 전통적인 비판 기획과도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나는 로티가 기대하는 문학가들 또한 그들만의 상징공간에서 움직이고, 따라서 그들의 예술적 성취가 일반인의 생활세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생각만큼 직접적이거나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회비판, 정치이론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대답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어떤 사회적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자들도 연구를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도 좋다는 것이었다. 발레와 시, 음악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회의 해방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바우만의 말처럼 해방된 상태가 그렇지 않은 상태보더 더 낫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을까? 또하나의 어려운 질문은 만약 우리가 우리를 억압해온 사회제도나 믿음, 관습을 비판하고 제거하고 나면, 우리는 사회질서를 가능케 하고 성원들을 묶어주는 어떤 관습이나 믿음도 불필요하다고 여기게 될까? 그렇지 않고 제도나 믿음, 관습을 계속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결국 또다른 억압의 세계, 물화된 세계로 귀결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끊임없는 탈물화가 절실하겠지만, 궁극적인 탈물화 ― 완벽한 해방의 상태 ― 는 그려낼 수 없는 게 아닐까?」*


15/07/26


* 김경만. (2015).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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