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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을 이해하는 관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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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을 이해하는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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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착각, 혹은 오해 가운데 하나가 "한문을 오래 읽고 많이 외우고 있으면" 그만큼 이해도 깊어지고, 체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문의 뜻은 그 텍스트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다! 유교는 유교 밖에 있고, 불교는 불교 밖에 있다. 오래 읽은 사람이 그 텍스트를 가장 모를 수 있다. 이것은 역설이지만, 또한 진실이다.

소설가 이병주의 『허망과 진실』이라는 책이 있었다. 사마천과 루쉰, 다산, 니체 등을 읽고 느낀 감상과 평을 적은 에세이였는데, 그 가운데 다산 편을 읽은 어느 학자는, 자신이 그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없어서 연구를 포기하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철학 이야기』로 유명한 듀런트는 『문명 이야기』 첫 권에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사상을 다루고 있었는데, 거기 주자학과 양명학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왕양명은 주자처럼 자연이 최고의 선이며, 그 자연의 법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덕으로 보았다. 누군가가 자연에는 철학자뿐만 아니라 뱀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자, 그는 아퀴나스와 스피노자, 그리고 니체의 기풍으로, 선악이란 편견이며, 개인이나 인류에 유익한지 해로울지에 따라 붙인 이름들일 뿐이라고 했다. 양명은 '자연은 선악을 넘어 있으며, 우리들의 이기적인 명명을 무시한다'고 가르쳤다."(Will Durant, Our Oriental Heritage, 1935)

나는 왕양명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익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주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이 통찰을 1930년대에, 한문도 읽을 줄 모르면서, 영역된 책 한두권과 논문들을 일별하고는 선취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그 발상이 주자나 양명만의 것이 아니라 서양의 일급의 철학자들과 공유한다는 것까지 짚어주었다. 멀리, 라이프니츠는 선교사들이 편지로 전해주는 중국의 역易, 그리고 주자학의 자연을 읽고, 물리적 사고와는 다른 유기적 사고를 간파했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 속에 새겨넣었다.

이를 보매, 동양철학에서의 관건은 한문을 읽는 능력보다, 그것을 통해 사유하는 힘이다. 문자를 뜯어 읽고 널리 보는 박학은 기본이라 자랑할 것이 못 된다. 이 바탕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모색하는 '구체적 탐구'가 필요하다. 즉, 심문審問을 토대로, 신사愼思의 구체화, 그리고 명변明辯의 자신감, 마지막으로 독행篤行의 확인까지 나아가야 자득自得을 말할 수 있다. 그 자산 위에서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이나 다른 인문사회과학과 더불어, 호전이나 아부의 극단을 지나,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우정이 있는 곳에 창조가 있다.」*

14/09/06

* 한형조, <왜 조선 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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