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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

모험러
"노동자는 일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열심히, 더 적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을 쓴 저자가 서문에서 한 말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을 깜빡했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 적어 놓은 19세기 노동자들의 끔찍한 노동환경과 치명적인 건강문제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다만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식인 것 같다. '토양과 해양의 쓰레기 오염 문제?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돼. 매일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돼. 비윤리적으로 키워지고 도살되는 동물들?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돼. 내 눈앞엔 깨끗하고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만 제때 진열되어 있으면 돼. 아참, 저렴하게.'

이 책이 분석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이란 나라도 참 깜깜하다. 일자리 협박 앞에 장사 없다. 노동자들은 오염 현장도 좋으니 일자리를 달라고 애걸한다. 슬픈 것은 미국보다 한국이 더 끔찍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업무상 재해로 말미암은 사망률이 한국이 미국보다 5배는 높다. 한국에서는 매일 약 6.7명의 노동자, 매년 2,500여 명의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죽는다. 직업병에 걸리거나 다치는 사람은 공식 통계로만 매년 8만 명이 넘는다.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유명하다.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단연 1위인데, 최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도 1위라는 소리도 들린다. 복지지출은 꼴찌를 다툰다. 대한민국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정글인 것이다.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며, 남의 죽음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러다간 내가 죽으니까. 이 정글에서 민주주의란 "슈퍼마켓에서의 선택"이거나 또 하나의 "구경거리 스포츠"이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전남 화순 병원 신축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 사망했고, 경제난 심화로 중년 남성들의 자살률이 여성의 2.7배가 되고 있으며, 쌍용차 평택공장서 한 직원이 자살을 기도해 중태고, 한 50대가 고독사하여 반지하에서 20일 넘게 시신이 방치되었다는 기사를 언론은 전하고 있다. 나는 어제도 지명과 인명만 다른 비슷한 기사들을 본 것 같다. 이 비루한 현실은 내일이라고 다를 리 없을 것이고, 나는 아마 내일도 비슷한 기사를 무력하게 읽게 되리라.
 
"오래된 계급 구분이 사라져간다는 상투적 표현과 기분 좋은 개념은, 미국 노동자들이 중간계급과 달리 심각한 손상, 심지어 죽음까지 그들의 일상적인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의해 공허한 말임이 드러난다. 상상해보라. 만일 해마다 여러 개의 기업 본사가 광산처럼 붕괴되어 60~70명의 기업 간부들이 깔려 죽는다면 일어날 만일의 아우성을. 또는 모든 은행이 경영진, 사무원, 출납계원에게 꾸준히 암을 유발시키는 보이지 않는 독성 먼지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이런 공포를 상상해보자. 매년 수천 명의 대학 교수가 일을 하면서 귀가 멀고, 손가락, 손, 때로는 눈을 잃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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