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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변증법, 헤겔의 사랑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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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변증법, 헤겔의 사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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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주-객 동일성, 그러한 자기의식이 오로지 사랑에서만 완전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사랑에서 자아(주체)가, 타자가 자아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듯이, 자기를 타자(객체) 속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경험 속에서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는 서로를 통해 자신들의 본성을 실현하며, 더 나아가 그들 각각은 오로지 타자를 통해서만 자기를 인식한다. 바로 이렇게 자아와 타자 사이에 타당성을 지니는 자기의식의 단일한 구조가 존재하는 까닭에 주-객 동일성이 존재한다. 자아는 타자가 자아 속에서 자기를 알듯이 타자 속에서 자기를 아는 것이다.

하지만 헤겔은 더 나아가 사랑이 동일성의 계기뿐만 아니라 차이의 계기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차이 속의 통일인 것이다. 사랑 속에는 차이도 존재하는데, 본성상 사랑은 오직 타자가 타자이기 때문에만 타자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직 평등하고 자립적인 파트너들 사이의 상호 존중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자아는 그가 타자를 지배하고 자기에게 종속시키려고 한다면 그 타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헤겔에게 있어 사랑이 단지 정태적인 구조나 형식이 아니라 생동하는 경험이자 과정이라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좀 더 특수하게 표현하자면 사랑은 자아가 (개체로서의) 자기를 상실하는 동시에 자기를 (좀 더 넓은 전체의 부분으로서) 발견하거나 획득하는 역설적인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기-양도의 계기와 또한 자기-발견의 계기를 포함한다. 사랑에는 자기-양도의 계기가 존재하는데, 자아는 궁극적 가치로서의 자기-이해관계를 포기하고 자기를 타자에 대립하여 정의하기를 그침으로써 자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발견의 계기도 존재하는데, 사랑에서는 자아가 타자 안에서 그리고 타자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자신이 더 이상 타자에 대립된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와 타자의 통일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헤겔은 사람들이 자기를 타자에게 내어줌으로써 더 풍부해지는 사랑의 공통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랑으로부터 산출되고 결과하는 것, 즉 자기-양도와 자기-발견, 외면화와 내면화의 과정 전체를 헤겔은 정신(Geist, 영)이라고 부른다. 사랑의 경험 속에 포함된 대립하는 운동들 ― 외면화와 내면화, 자기-양도와 자기-발견 ― 을 헤겔은 나중에 '변증법'이라고 부르게 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자연의 유기체적 통일성의 부분들이다. 유기체에서는 부분들이 전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고 전체는 그 부분들 각각에 내재적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름 아닌 우주 전체를 각각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유기체적 통일이 의미하는 것은 자아가 타자를 사랑할 때 그것은 단일한 개인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통해 작용하는 자연 전체의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아가 타자를 사랑할 때 자아는 또한 ― 잠재의식적인 형식에서긴 하지만 ― 자기 안에서 그리고 자기를 통해 작용하는 무한자를 느낀다. 그리하여 헤겔은 생명이 사랑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에 특징적인 내면화와 외면화의 전체 과정으로서 현현시킨다고 쓰고 있다.

결국 사랑은 우주 그 자체가 지닌 힘들의 정점이다. 자연의 살아 있는 힘은 인간의 경험에서 그 최고의 현현과 조직화와 발전을 이루는데, 사랑이 인간 경험의 가장 강렬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헤겔이 우리로 하여금 종교를 통해 계발하도록 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사랑을 통한 우주의 자기-인식이다.」*

헤겔 이 양반, 알면 알수록 만만치 않다.

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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