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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 명구절

마야(maya)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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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도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은 바로 그것이 피해야 했던 덫에 빠져들었다. 즉, 인도인들은 대부분 마야(maya)가 추상적인 세계라는 점을 깜빡 잊고, 이를 직접 경험의 대상인 구체적인 자연세계인 줄 잘못 알았다. 이런 혼동 때문에 일체의 감각 경험을 배제한 의식을 통해서 자연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 것이다. 마야(maya)를 감각을 통해서 투영되는 사유의 환상이라 여기지 않고, 감각 자체의 환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더군다나 감각 경험이 영적 통찰력을 획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라 여겨서, 감각 경험을 의식으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요가를 개발했다. 이 요가로 단일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배타적인 집중력 ― 바로 무명(avidya)! ― 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도철학의 대부분이, 사실상 세계를 부정하는 온갖 이원론의 원형이 되었다. 또 감각경험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함에 따라 마야의 폐해를 이중으로 입게 되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자연 세계로서의 마야로부터 벗어나는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이 세계에 투사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보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환상 속으로 스스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감각이야말로 순수한 것이며, 자기기만은 차라리 사유와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마야에 대한 이 같은 오해가 대승불교에서, 특히 중국의 대승불교에서 대부분 교정된다. 『능가경』 제2품 18절의 이런 구절을 보라. 열반, 곧 마야로부터의 해탈이 장차 감각과 감각영역을 파괴하는 것이 아님을 알라. 중국선사 승찬은 분명히 언급한다.

    감각세계를 배척하지 말라.
    바로 감각에 거역하지 않는 그 순간에
    곧 완전한 깨침의 소식이 들려온다.」*

- 앨런 왓츠

몸과 마음의 감각을 잊고 공(空) 속으로 침잠하는 수행을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의 감각에 나날이 더 깨어나는 수행을 해야 한다. 이 세계는 환영이 아니다. 이 세계를 좁은 틀에 가두어 편 가르게 하고 빛바래게 하는 잠들어 있는 마음이 환영인 것이다. 세상은 놀랍고 찬란한 실재다. 이 실재로 들어서는 문은,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다.

13/12/06

* 앨런 왓츠, <있는 그대로의 자유>에서 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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