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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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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의 <무경계>와 <에덴을 넘어> 혹은 <무경계>와 <통합 비전>을 나란히 놓고 읽어 보라. 같은 저자가 쓴 것이 맞나 의심이 들 것이다. 켄 윌버는 <무경계>를 쓴 이후 자신의 사고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겪었다. 혁명적으로 도약했다.

<무경계>는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영성/명상 관련 책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잘 쓴 책이다. 그러나 기존 책들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다. 우주와 합일하는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미 깨달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깨달음에 도달할 수단 같은 것은 없는 것이며, 다만 우리가 이미 깨달은 상태라는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치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에고는 근원에서 이탈한 일종의 질병으로만 보는 관점이 내재해 있으며, 그렇기에 시비분별과 대립의 세계에서 근원의 세계로, 어머니의 품으로 회귀하고 싶은 욕망이 내재해 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탕아들이다.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에덴동산으로.

불가/도가/신비주의는 99.82%(다시 생각해보니 한 87%) 저런 내용이다. 세상은 꿈이거나 환영으로만 인식된다. 생각, 지식, 지성은 에고의 것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진리는 근원의 침묵 세계로 회귀하는 것에 있다. 인간이 발달시켜 온 모든 물질적인 것들, 문화적인 것들, 사회적인 것들, 기술적인 것들은 인식되지 않거나, 그 부정적인 측면들만이 논해진다. 문명, 그까짓 것은 허망한 것이다, 원대한 깨달음 앞에선. 깨달음만이 오직 가치 있는 것이며, 세속적인 것들은 허무할 뿐이니, 추구하지 마라, 바라지 마라, 생각하지 마라, 경쟁하지 마라, 그저 순응하라.

<무경계>에서 도약한 켄 윌버는 말한다. 그것은 퇴행이다. 에고를 발달시키기 전의 의식의 유아적 상태와 에고를 넘어선 의식의 고차원적 상태는 겉으로 보기엔 거의 똑같아 보인다. 원시공동체 사회, 신화적·마술적 문명 단계의 사회, 에고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아기는 그래서 완전해 보인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인류는 주술적 상태에서 깨어나 나와 이웃과 세상을 인식하고 탐구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정신을 발달시켜야 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진화한다. 인간의 의식을 포함해, 아무 것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진화가 곧 장밋빛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더 높은 진화에는 더 높은 단계의 새로운 혼란과 위기, 새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 새로운 책임이 주어진다. 한 개인이 명상으로 지고의 의식(우주의식, 무아, 깨달음)과 합일하고 에고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우주적 진화의 한 일부이다. 진화는 이전 단계를 초월하지만 그것을 변형하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초월한다. 궁극의 영성을 체험했다고 그의 나머지 수많은 인간적인 재질들(과 한계들)이 저절로 진보되는 일은 없다. 깨달은 인간이 완성된 인간이라는 것은 신화이며, 그것은 유아적 상태를 완성된 인간으로 보는 관점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뉴에이지 운동, 자아초월 심리학, 생태주의, 신비주의, 도 닦는 업계는 더 높이 비상하려는 욕구와 더 낮은 곳으로 회귀하려는 퇴행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켄 윌버 편에 선다. 나는 켄 윌버를 이름조차 몰랐다. 요즘 어렴풋이 켄 윌버의 사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듯 내 앞에 나타났다. 돌이켜보면 늘 이랬다. 언제나 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는 조응했다. 내 삶의 새로운 시기를 시작할 때다. 기운이 솟는다. 에덴동산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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