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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본문
<천천히 읽기를 권함>에서 제일 좋은 부분은 책의 첫 두 쪽이다.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장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고양이의 주인집에 여러 친구가 모인 날의 일이다. 무료한 잡담 끝에 짧은 가을 해는 지고 손님들은 인사를 하고 뿔뿔이 현관을 나선다. 구샤미 선생은 서재에 틀어박히고, 아내는 바느질을 시작하며, 아이들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잠이 든다. 그리고 하녀는 목욕을 하러 간다. 석양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집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소설도 조용해진다. 그리고는 살며시 모습을 내미는 한 문장,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저자는 감동하여 생각한다. '이렇게 고요한 야음의 광경이, 이렇게 적막한 말이 이 소설에 있었던가.' 저자는 이 문장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세 번째 읽었을 때에야 발견했다. 왜 그전에는 이 문장이 저자의 인상에 남지 않았던 것일까? 답은 '빨리' 읽어서이다. 빨리 읽는 사람은 문학의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시는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속독파들은 문학 쪽은 아예 손대지 않는다. 속독파가 보기엔 지독은 시간 낭비다. 그러나 지독파가 보기엔 속독이야말로 '인생의 낭비'다.
"세상에는 천천히 읽을 수 없는, 천천히 하는 독서를 견딜 수 없는 책이 있다는 것인가. 물론 그런 책이 있다. 그러나 그런 책은 바로, 결코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다. (중략) 천천히 읽는 것, 이것이 첫 번째 원칙이며 모든 독서에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 에밀 파게
- 에밀 파게
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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