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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석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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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글에서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월평균 300만 원 이상의 소득이 필요하다는 글을 봤다. 그러나 연 수입 80만 원으로도 천하에 아쉬운 것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경남 창녕에서 폐가를 수리하여 사는 석청산 씨가 바로 그렇다. 그의 주업은 '정신수련'이다. 부업은 다양하다. 기왓장이나 쌀가마니 등 등짐 지어 나르기, 부산역 광장에서 하모니카 불기, 전 세계를 누비며 그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단소 불어 주기, 손금 봐주기, 지압해주기, 영화 엑스트라 출현 등등. 

석청산 씨는 산으로 도를 이루었다. 단순히 산에 들어가 도 닦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산' 자체를 탐구한다. 어느 한 분야의 궁극을 탐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도인이며, 그들이 깨닫는 무언의 지혜는 그 분야의 테두리 내로 갇히지 않는다. 그는 가스통 뤼뷔파의 <neige & roc>, 로얄 로빈스의 <베이직 록 크래프트>부터 독일 등산지 <베르그 슈타이거> 영국의 <하이> 미국의 <어센트> 같은 잡지를 원서로 읽는다. 산과 관련한 책으로는 빙하학, 기후학 서적까지 섭렵했다고 한다. 헌책방에서 먼지 쌓인 <마운틴>을 발견한 기쁨을 그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에 빗댄다. 이미 젊은 시절에 스스로 장비를 만들어 암벽등반을 했고, 우리나라 산악역사에 대해서도 훤하다. 그는 산악인을 볼 때 그 사람의 장비뿐 아니라, 철학, 사상까지 들여다본다. 이렇게 산을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 산악계의 가장 큰 문제는 등산이 삶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된 것에 있다고 꼬집는다(둘 째 문제는 산악인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 

결정적으로 내가 이 양반의 경지가 보통을 넘어섰다고 느낀 것은, 왜 산에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였다.

― 왜 산에서 사십니까?

"전세금이 없습니다. 제일 살고 싶은 데가 서울이지만, 그렇다고 노숙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서울, 얼마나 좋습니까. 흐흐 사람들의 그 무관심한 눈빛과 정글~."

제일 살고 싶지 않은 데가 서울인, 또 서울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사람들의 그 무관심한 눈빛과 정글이었던 나는, '난 아직 한참 멀었구나' 생각하며 웃었다. 

1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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