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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바라보기 위해 존재한다 본문
「신적 정신은 인간적 정신 안에서 이를테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창조하고자 하며, 인간적 정신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신과 닮은 젊이 적다는 점 때문에 완전해질 수 있다. 불완전하기에 신에게 동화되는 과정이 가능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신은 자신의 생동성을 입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지막 저술인 『관조의 정점에 대하여』(1464)에서 쿠자누스는 포괄적인 인식낙관주의를 옹호한다. 즉, 모든 것은 정신 때문에 현존하지만, 정신 자체는 ′스스로 할 수 있음′을 관조하기 위해 현존한다는 것이다. 이 ′스스로 할 수 있음′은 니콜라우스가 도입하고자 한 수많은 신의 이름들 가운데 최종적인 것이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이야기. 위파사나를 말하는 선불교가 떠오른다.
17/11/26
* 비토리오 회슬레, 『독일 철학사: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에서 발췌,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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