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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행의 근본, 알아차림(위파사나) 본문

명문장, 명구절

모든 수행의 근본, 알아차림(위파사나)

모험러
「수행승들이여, 뭇삶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게 하고,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게 하고, 바른 방도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길이 있으니, 곧 네 가지 알아차려야 할 곳을 관찰하는 것이다. 즉,

1)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한다.
2) 느낌에 대해 느낌을 관찰한다.
3) 마음에 대해 마음을 관찰한다.
4) 사실에 대해 사실을 관찰한다.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는 짧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걸어가면 걸어간다고 분명히 알거나 서있으면 서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앉아있다면 앉아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누워있다면 누워있다고 분명히 알거나 신체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취하든지 그 자세를 그대로 분명히 안다. 수행승은 이와 같이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한다.

즐겁고, 괴롭고,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면 그 느낌을 분명히 알고, 그것의 생성과 소멸을 관찰한다. 수행승은 이와 같이 느낌에 대해 느낌을 관찰한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긴장된 마음, 고귀한 마음, 집중된 마음, 해탈된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을 분명히 알고 관찰한다. 수행승은 이와 같이 마음에 대해 마음을 관찰한다.

쾌락, 분노, 해태와 혼침, 흥분과 회한, 의심이 생겨나면 생겨나는 대로 분명히 알고, 생겨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 대로 분명히 안다. 수행승은 이와 같이 사실에 대해 사실을 관찰한다.

수행승이여, 일상에서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림을 성취해야 한다. 앞으로 가건 뒤로 돌아오건, 올바로 알아차려라. 앞으로 바로보건 뒤로 바로보건, 올바로 알아차려라. 몸을 굽히건 몸을 펴건, 올바로 알아차려라. 옷을 입고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먹거나 마시거나 삼키거나 소화시킬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대소변을 볼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가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깨거나 말하거나 침묵할 때에도, 올바로 알아차려라.

수행승들이여, 칠개월 동안까지 못하더라도, 수행승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새김의 토대를 육개월, 오개월, 사개월, 삼개월, 이개월, 일개월, 반 달 동안만이라도 닦으면, 지금 여기에서 궁극적인 지혜의 열매가 열릴 것이다.」*

도 닦는 업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수행은 집중, 몰입, 삼매에 드는 수행이다. 이 모든 수행은 일반인 수준에서는 지독히도 어려울 뿐 아니라 삶과 수행을 분열시킨다. 붓다는 이런 조류를 뛰어넘어 삶과 수행이 조금도 분리되지 않는 혁명적인 수행을 내놓았다. 그것이 위파사나(깨어있음, 주시, 관조, 각성, 봄, 알아차림)이다. 붓다 자신이 깨닫기 전 요기 스승 밑에서 삼매에 들어 무(無)의 극한에까지 이르러봤지만, 그것으로는 바른 지혜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수행을 포기하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샛별을 보며 지금 여기를 알아차리는 순간 대각(大覺)을 이루고 참된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집중력, 몰입이 사람을 영적으로 성숙시킬 것 같으면, 고시패스자나 프로바둑기사 같은 사람들은 죄다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몰입하고, 삼매에 들어 시공간을 잊고, 몸과 마음을 잊는다고 해도, 그대로 죽을 게 아니면 몰입을 깨고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야 한다. 삶은 심심하기에, 다시 몰입에 몹시도 빠지고 싶어진다. 몰입의 경험이 강렬할수록 역설적으로 몰입에서 빠져나와 살아야 할 때가 더 많은 삶은 괴로워진다. 그리하여 몰입은 치명적일 정도로 중독성이 강해진다. 이러한 분열을 넘어 삶 자체를 긍정하고 즐기는 길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는 길밖에는 없다. 알아차림은 수행의 근본이다.

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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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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