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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理學의 재발견 본문
이학의 재발견, 좋다. 그러나 우리는 이理(초월, 절대, 신 등등)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기서 이를 잡든 말든) 일갈한 도올 김용옥에 나는 더 동의한다. 이성은 몸의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삶의 목적은 순결하고 고상한 이념으로부터가 아니라, 오욕칠정을 가진 몸으로부터 자득(自得)해야 한다. 즉,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근대'는 기학의 축 위에 서 있다. 도저한 근대화가 진척된 지금에도, 그러나 재래의 이학의 관성은 완강하다. 그 기억의 흔적이 기학의 철저화와 전면화로서의 지구촌화나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제약하고 있다. 그 갈등은 지금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기학의 사고를 넘어 이학의 재발견이 한창이다. 2003년 하버드에서 열린 다산학 국제학술회의에서 뚜웨이밍은 유교적 가치의 제고에 있어, 피에르 아도가 앞장선 '그리스 로마의 지혜'의 재발견을 동반자로 여기고 있었다. 계몽적 이성 너머에서 매킨타이어는 다시금 '덕을 요청'하고 있고, 푸코는 스토아적 이성을 새롭게 제창했다. 소외와 생태를 둘러싼 담론이 무성하고, 근대의 위기가 운위될수록 한때 우리 손으로 추방한 이학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간다. 과연 그렇다. 목적 없는 삶,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음미되지 않는 삶"을 우리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일찍이 니체가 근대의 종말을 예언하며, "인간은 초극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 그리고 하이데거가 과학과 기술로 소외된 존재자를 구원할 '존재의 철학'을 숲 속에서 읊조린 것도 지구적 규모, 문명적 차원에서 일고 있는 '이학의 재발견', 그 르네상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미래가 이들 이학의 공통 가치들이 대화하고 연대하면서, 그것을 기학의 현실주의와 접목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1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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