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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몸의 느낌이 있을 뿐

모험러
「모더니티의 인간학적 규정이 합리성(Rationality)이라고 한다면, 플레타르키아(민본성民本性)의 인간학적 규정은 합정리성(Reasonableness)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합리성은 인간의 이성(Reason)을 감정이나 현상론적 감각으로부터 분리시키지만, 합정리성은 인간의 이성을 칠정(七情)이라는 감정의 한 측면으로 귀속시킨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느낌(Feeling)으로 일원화시킨다. 인간의 수학적 계산능력이라는 것도 인간의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고도화된 계산능력이라도 그것은 의식의 현상이며, 의식은 느낌의 고도화에서 발생하는 사태이다. 그것이 토톨로기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톨로기는 하나의 약속체계에 불과한 것이다.

"합정리적" 판단이란(그냥 상식적으로 "합리적" 판단이라 말해도 좋다) 토톨로기라는 특수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삶의 판단을 지칭하는 한, 어떠한 신념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가능한 한 많은 타당한 증거자료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 과정을 개방적으로 거치는 습관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삶의 판단은 개연적일 수밖에 없고, "보다 더 많은 타당한 증거"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도 개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벽한 합정리적 "리"(理)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리"(理)는 그러한 완벽성을 지향케 하는 하나의 순결한 이념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리(理)가 곧 현실일 수는 없으며, 리(理)가 현실적으로 파악되는 한에 있어서는 리(理)도 개연적일 수밖에 없으며 정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기(氣)적인 사회(Society)의 지향점으로서의 이상을 제시하면서도 그 사회에 내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합정리성에 대한 완벽한 객관성(objectivity)의 보장이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모든 판단은 몸의 판단일 뿐이며, 이 몸의 판단은 순리(純理)적인 판단일 수가 없으며, 퇴계가 말하는 바, 리발과 기발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몸은 일차적으로 이기적 욕망의 체계이다. 여기 일차적이란 말은 근원적이며 저변적이라는 말이다. 모든 객관성의 외투에는 이기적 욕망을 정당화시키려는 노력이 숨어있는 것이다. 심지어 과학자의 과학적 판단에도 과학자의 주관적 경험이나 기호의 정당화의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 매일 TV에 쏟아지는 과학적 실험의 결과가 일차적으로 어떤 합목적적 구도 속에서 도출된 것이라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그 합목적성에는 과학자가 처해있는 사회의 정치권력의 구도나, 그의 주관적 감정과 기호 등등의 요소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누우스(nous)로부터 규정하려고 한 희랍철학이나, 이성(Reason)으로부터 규정하려고 한 근세철학은 매우 편협한 것이다. 그러한 편협한 이상을 근대적 인간(Modern Man)의 지향점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희·노·애·구·애·오·욕의 칠정으로부터 규정하려고 한 조선유학의 모든 논리는 훨씬 더 포괄적이고 구원하며 콘템포라리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플레타르키아의 인간(Man of Pletharchia)은 결국 칠정의 인간(Man of Seven Sentiments)인 것이다.」*

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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