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관능과 욕정을 제어할 수 없는 자들이 그것을 증오하고 적대하고 억압한다 본문
「(주자의 경전 해석에 일자일구도 손을 못 대게 하고, 소소한 상례의 기간과 절차를 두고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이고, 이 입법을 무시한 다른 인종과 문화는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과부에게 재가를 하기 보다는 절개와 의리를 강요하는 임진왜란 이후 노론이 주도하는 주자학 문화에 대한 각주에서)
왜 조선 후기 그 예가 문제였을까. 나는 어느 날 니체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거세나 근절 같은 것은 의지가 박약하고 퇴락하여, 도저히 절도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느라고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수단이다. ... 그러한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퇴락한 사람들이다. ... 성직자와 철학자들의 역사, 그리고 예술가들의 역사를 조사해보라. 관능에 대한 가장 극심한 독설들은 노쇠한 자들이나 금욕자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금욕자가 될 수 없었던 자들, 그리고 금욕자가 될 필요가 있었던 자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니체, 『우상의 황혼』)
박찬국 교수는 이 구절에 대해 친절한 부연설명을 해주고 있다.
"자신의 욕정을 적절하게 통제할 만한 의지력을 갖지 못한 자들만이 욕정과 정념을 적대시하고 제거하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이에 반해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적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증오를 품으며, 그를 제거하고자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능이나 욕정을 여유 있게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증오하지도 적대하지도 않는다."
아, 알겠다. 이理를 내세우지 않은 화담이 오히려, 황진이의 적극적 육탄공세를 웃음과 여유로 받아넘길 수 있었던 곡절을······ 나는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도 도덕을 외치고 이상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회의하고 경계하는 무의식적 버릇을 갖고 있다.」*
1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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