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하학 (3)
모험러의 책방
「오직 하학 처에서만 성공이 있는 것이지 상달에 도달하는 데는 오히려 힘을 쓸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희는 하학(下學)하면서도 상달(上達)할 수 없는 것은 다만 하학에서 얻는 것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 주장은 분명하다. 그런데 주희는 홀연 상달이라는 말을 하였으니 나 보기에 타당하지 않다. 만일 어떤 시기를 인연으로 얽어 놓고 미혹과 깨달음의 시간 경과에 따라 본다면, 이미 불가의 붕당에 들어간 셈이다. (···) 홀연 상달은 이미 하학하는 일과 양편을 갈라서 상달한 이후에 일체무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불가가 벽돌 조각으로 문을 두드려서 문이 갑자기 열리면 벽돌조각은 쓸모가 없다는 취지이다. 불가는 돈멸을 깨달음으로 삼기 때문에 가르침이 그런 것에 있다. 그러나 성인..
수신(修身) 혹은 수양(修養)을 철학의 중심 과제로 늘 꽉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동양의 종교나 철학 전통의 위대함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형이상학은 단지 지식으로 알아할 과제가 아니라 몸으로 증득하고 체험하고 검증해야 할 과제였다. 공자가 말했듯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로다. 「'철학'의 외양을 한 필로소피가 등장함으로써 전통유학이나 불교는 때 아니게 정체성을 의심 받고, 정당성을 도전 받게 되었다. 논리와 체계로 무장한 철학은 묻는다. "얘야, 유교는 일상의 조언들로 가득 차 있던데, 그건 철학이냐, 잠언집이냐." 그리고 유일신의 초월성을 등에 업은 '종교'는 묻는다. "불교야, 너는 무신론 같기도 하고, 다신론 같기도 한데, 너를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
"무릇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학(下學)이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상달(上達)이다. 예컨대 나무를 재배하고 물을 주는 것 따위는 하학이며, 밤낮으로 조금씩 자라서 가지가 뻗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은 바로 상달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 생장하는 힘에 간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릇 힘을 기울일 수 있고 말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하학이다. 상달은 오직 하학 속에 있다. 무릇 성인이 말씀하신 내용은 비록 매우 깊고 미묘하다고 할지라도 모두 하학이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학으로부터 힘쓰기만 하면 자연히 상달하게 되기 때문에 따로 상달하는 공부를 찾을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