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책임감 (3)
모험러의 책방
「... 이와는 달리 를 중시하지 않는 윤리, 그것이 곧 절대윤리입니다. 행위결과의 무시, 바로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 문제를 좀더 상세히 살펴봅시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윤리적으로 지향된 모든 행위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서로 전혀 다른, 화합할 수 없이 대립적인 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에 따라 수행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는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원칙입니다. 물론 이 말이, 신념윤리는 무책임과, 책임윤리는 무신념과 동일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념윤리적 원칙하에서 행동하는가 ―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독교도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그 결과는 신에게 맡긴다" ― 아니면 책임윤리적 원칙하에서 ― 우리는 우리 행동의 (예견 가능한) 결과에 대해..
「정치가에게는 주로 아래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 및 이 대의를 명령하는 주체인 신, 또는 데몬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의미하며, 그런 이상 이 열정은 객관적 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열정은 고인이 된 나의 친구 게오르크 짐멜이 라고 부르곤 했던 그런 내적 태도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유형의 러시아 지식인들에게서 (물론 그들 모두는 아닙니다!)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이런 태도는 현재 사람들이 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장식하고 있는 카니발에서 우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로서, 이것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으며 또 어떠한 객관적 책임..
「아무튼 저널리스트는 일종의 아웃사이더 계층에 속하며, 가 이 계층에 대해 내리는 사회적 평가는 항상 이 계층의 윤리적으로 열등한 대표자들을 기준으로 내려집니다. 그래서 저널리스트 및 이들의 일에 대해서 온갖 이상야릇한 생각들이 퍼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훌륭한 저널리스트적 업적은 어떤 학문적 업적 못지 않게 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저널리스트의 기사는 지시에 따라 즉시 작성되어야만 하며, 또 즉시 영향력을 발휘해야만 하기 때문에 재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학자와는 전혀 다른 집필의 조건하에서 말입니다. 저널리스트의 책임은 학자의 책임보다 훨씬 더 크며 모든 성실한 저널리스트의 책임감 역시 평균적으로는 학자의 책임감보다 낮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