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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피에르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La Misère du monde)』의 독자들에게 일깨우는 바, 아주 먼 옛날의 것이긴 하지만 지금도 유효한 히포크라테스 전통에 따르면 진정 효염 있는 치료약은 보이지 않는 질병 ― "환자들이 이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말하는 것을 잊어버린 사실들" ― 을 간파할 때 시작된다. 사회학의 경우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외견상의 징후를 보고 이를 논의하여 결국 그 구조적 원인들을 왜곡하여 드러내는 경우를 밝혀내는 것이다." 우리는 "의심할 바 없이 이 크나큰 불행을(종종 격퇴했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 정도로 기여는 못했던) 격퇴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온갖 소소하고 잡다한 불행들이 전례 없이 급증할 조건들을 부여하는 사회적 공간들을 엄청나게 양산한 이 사회 질서에 특징적인 고통..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ornelius Castoriadis)의 『서양의 파산(Le délabrement de l'Occident)』을 인용해보자. 자율적인 사회, 진정 민주주의 사회는 미리 주어진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사회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제반 의미를 창조하도록 해방하는 사회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그리고 할 능력이 되는) 창조를 자유롭게 한다. 사회는 일단 '확실시되는' 의미란 없다는 것, 그 사회가 혼란을 바탕으로 살고 있다는 것, 사회 그 자체도 하나의 형식이지만 최종 고착되는 일이 없는 그러한 형식을 추구하는 일종의 혼란임을 스스로 알게 될 때 진정 자율적 사회가 된다. 확실히 보장되는 의미들 ― 절대적 진실, 미리 지정된 행동..
「일단 사회에 나가면, 자율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은 여러 장애에 직접 부딪치게 된다. 만일 그에게 재산이 없다면 재산이 문제가 될 것이고, 그가 사회적인 위계질서에 따라 올라서거나 그에 반대하고자 한다면 위계질서가 문제가 될 것이며, 종교가 자기의 의사표현을 통제한다는 모순을 깨닫는다면 종교가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프로테스탄트가 득세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매우 신중하게 자기 행동을 통제하더라도 그는 에라스무스나 갈릴레이가 누렸던 것과 같은 자유는 결코 보장받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앞선 인간과 뒤처진 인간 사이에 자율형 인간의 등장을 허용하는 작은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 14/08/28 * 데이비드 리스먼, 에서 인용, 수정. 고독한 군중 홀로서기
「가라타니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란 오직 유럽과 일본 봉건제 속의 '자치도시' 또는 '자유도시'에서만 발생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남송 시대 주희의 사창(社倉) 구상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상환 의지의 주체로서의 자영 소농민들 속에서 그러한 의미의 자유와 자율의 싹을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일까? 유교적 공론장인 향촌의 서원과 사우 등 문인 공동체의 네트워크는 어떤가? 대중유교의 공론장이었던 여러 대중 강학 장소에 모여든 농민과 상인들은 또 어떤가? 비단 유교사회만이 아니다. 이슬람과 불교, 힌두 문명권에도 이러한 의미의 자유와 자율의 공동체가 많았다. 이러한 곳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유럽의 동양관,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이론적 표현으로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