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성이 지나치면 완고함이 되고, 유연성이 지나치면 줏대를 잃게 되니, 현자는 비편파성의 흐름을 탄다
「모든 생성은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미 조절을 내포한다. 조절은 유동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내재하는 이 자극-조절의 능력은 운행의 비가시적 효능의 차원을 이룬다. 반면 비가시나 정신의 영역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면 불임성은 즉시에 야기되며, 그 결과 사물화(정체와 소멸)가 초래된다. 현자의 말도 이와 같아서, 그의 말이 단지 암기되고 인용되는 데 그친다면 더 이상 그 말의 생동한 의미의 원천인 내적 '흐름'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말해진 것이란 그 자체만으로는 (논리적 '진실'을 내용으로 하는)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의 뜻은 현행상의 자극과 작동상의 운행 속에서만 타당성을 지닌다. 말은 '정신'을 통하여 전달될 때 비로소 그 진정성을 얻는다. 이 통행과 활성의 기능을 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