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이 자신들이 생산한 위험을 처리하면서 '현실성 위기'에 빠지는 것도 기술자와 과학자가 소유한 위험 진단에 대한 독점권을 위태롭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안전하다는 것과 '십중팔구 안전할 것이다'라는 것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는 것이 체르노빌 이후에야 통용되는 진리는 아니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다. 기술과학은 항상 개연적인 안전에 대한 재량권만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진술은 설령 내일 두세 기의 핵발전소가 폭발해도 여전히 진리로 남을 것이다. [울리히 벡, 『글로벌 위험사회』 중] 정량적 계산이 주는 신뢰감은 그런 정량적인 평가가 객관적일 것이라고 믿는 우리의 태도에서 나올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객관성이라는 버팀목에 의지해서 도덕적으로는 다소 무책임한 ..
「피에르 부르디외가 『세계의 비참(La Misère du monde)』의 독자들에게 일깨우는 바, 아주 먼 옛날의 것이긴 하지만 지금도 유효한 히포크라테스 전통에 따르면 진정 효염 있는 치료약은 보이지 않는 질병 ― "환자들이 이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말하는 것을 잊어버린 사실들" ― 을 간파할 때 시작된다. 사회학의 경우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외견상의 징후를 보고 이를 논의하여 결국 그 구조적 원인들을 왜곡하여 드러내는 경우를 밝혀내는 것이다." 우리는 "의심할 바 없이 이 크나큰 불행을(종종 격퇴했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 정도로 기여는 못했던) 격퇴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온갖 소소하고 잡다한 불행들이 전례 없이 급증할 조건들을 부여하는 사회적 공간들을 엄청나게 양산한 이 사회 질서에 특징적인 고통..
「그러나 만일 현재 체현된 진보 개념이 너무나 생소하여 그것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있는지 궁금해진다면 이는 현대적 삶의 다른 매개변수들처럼 진보 역시 '개인화'되었기 때문일 터이다. 좀더 핵심을 말하자면 진보 개념에서 공적인 성격이 빠져나가고 사적인 것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 그것은 이제 공적인 성격이 사라졌다. 이는 지금 현실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제안들이 다종다양해졌기 때문이고, 기발하고 새로운 것이 정말 개선을 의미하는가라는 논쟁이 그것이 도입되기 전후로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고 선택된 연후에조차도 논박당할 여지에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개선이란 문제가 이제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 차원의 기획이 되었기 때문에 사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자신들의 지혜와 자원과 근면함을 이..
부만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도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위험 분배의 역사는 부와 마찬가지로 위험이 계급 유형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그 방향은 서로 반대다. 즉,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그런 만큼 위험은 계급사회를 폐지하지 않고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 울리히 백, 중 13/01/11 2013/01/09 - 노동자 건강의 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