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상처 (5)
모험러의 책방
「전자 기기의 경우와 달리, 한 인간에 대한 한 인간의 사랑은 헌신, 위험 감수, 자기희생의 의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불확실하고 지도에도 없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사람과 삶을 공유하고자 하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밝은 행복과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안락과 편의와는 함께 할 수 없다. 사랑은 안락과 편의에 대한 확신은커녕··· 안락과 편의에 대한 자신 있는 기대조차 가질 수 없다. 사랑은 당사자에게 그의 능력과 의지를 최대한 발휘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고 그의 부족함이 드러날 수 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살균되고 주름하나 없이 매끈하고 고통도 위험도 모르는 전자 공학의 산물들은 결코 사..
「조너선 프랜즌(Jonathan Franzen)은 *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술 소비주의(techo-consumerism)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겁쟁이들이 만들어낸 자기기만적인 가짜 세계라고 비판합니다.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껏해야 안락과 편의일뿐, 우리는 기술이 주는 친절한 반응들과 힘들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편안함에 서서히 길들여지는 것이죠. 기술은 소비자이자 사용자인 우리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니까요. 우리 모두의 소망이란 결국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일 겁니다. 그리고 기술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제공해주지요. 프랜즌의 지적은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이..
상처와 화상 치료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책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세균과 공생하는 '습윤치료'가 기존의 소독·멸균 패러다임을 대체해 피부 상처(특히 화상치료)로 지옥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누그러졌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 본다. 이 책의 주장이 맞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치료법에 따른 겪지 않아도 될 고통으로 몸서리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치료방법이 간단하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습윤치료법이 기존의 의학 관성을 바꾸는데는 아마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의 교훈은 바셀린과 친해지라는 것이다. 상처치료에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피부의 상재균을 죽이는 크림, 로션들 보다는 바셀린을 쓰자. 우츠기 류이치의 책 도 정확히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지난 달 8월에 결혼한다던 예비 신부가 있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아니 어떤 운 좋은 남자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이냐고 말하며 축하해주었고 그녀는 그런데 그 남자는 자기가 운 좋은 줄 모른다며 수줍어했다. 오늘 그녀를 만났다. 결혼식은 잘 올렸느냐고 반갑게 물었다. "헤어졌어요.." 그 목소리가 작고 또 전혀 나올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언뜻 알아듣지 못하고 "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구요?"라고 다시 묻는 실수를 했다. 다시 한번 헤어졌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짐짓 씩씩한 척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무언가 속상했고 또 괜한 걸 물어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12/09/11
정희진 선생이 쓴 을 다시 보았다. 새롭다. "공략하기 보다는 낙후시켜라"는 전략이 마음을 끈다. 저자가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대안을 묻는 질문자에게 '내겐 대안이 없다. 나는 다만 질문을 다르게 던져보는 사람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보통 내공이 아니다. 아래는 모두 정희진 선생의 말. "나는 어렸을 적부터, 대상이 사람이든 이데올로기든 조직이든, 더 헌신하는 사람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열정이 지나간 뒤의 황폐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왜 언제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열정적인 사람이 상처받는지에 대해 분개했다. 이것이 그 어떤 이념으로도 설명되지 않은 인생의 근원적인 불합리이고, 부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보다 사랑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