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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과거, 유토피아의 미래, 신화의 지금 이곳의 마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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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과거, 유토피아의 미래, 신화의 지금 이곳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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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 신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참된 상징은 우리를 원의 중심으로 데려가지, 둘레의 어느 다른 지점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상징에 의해 인간은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는 자아와, 다른 사람과, 하느님과 정서적·의식적으로 접촉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 사실 '상징이 죽었다"는 뜻이다."

시인과 신비가는 계시를, 존재에 대한 통찰이 신비적으로 전달되는 '허구의 이야기'로 본다. 반면 교파 신학자들은 내러티브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를 고집하며 여러 전승을 각기 다른 것으로 본다. 예수와 크리슈나, 붓다의 생애는 똑같지 않지만 그들 자신이 아닌 삶에 대한 상징으로서 그들은 동일하다. 토머스 머튼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어떤 상징을 이해하려면 단순한 징조가 아니라 '성체'와 '영적 존재'로서 그것에 반응하는, 자기 존재 안의 영적인 공명을 깨울 수 있어야 한다." "상징은 주체를 가리키는 객체다. 우리는 주체와 객체의 차원을 초월하는 더 깊은 영적 의식으로 부름을 받는다."

다시 말해 신화와 종교는 위대한 시이며, 그렇게 볼 때 하나하나가 완전한 전체인 '영적 존재' 도는 '영원'의 편재성을 가리킨다. 모든 신화와 모든 위대한 시, 모든 신비주의 전승은 이 같은 기능에서 서로 일치한다. 그런 고무적인 비전이 여전히 유효한 문명에서는 모든 사물과 모든 생물이 살아 있다.

따라서 신화가 현대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만족시켜야 할 첫째 조건은 지각의 문을 깨긋이 닦아 우리 자신의 경이, 그리고 우리를 눈과 귀와 마음으로 삼는 우주의 두렵고도 놀라운 경이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말하자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계시를 읽어 과거(머튼이 말하는 '둘레의 다른 지점'을 가리키고,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어떤 바람직한 미래를 약속하는 계시를 제공하지만, 인간의 마음에서 생겨난 신화는 마음(원의 중심)을 가리킨다. 진지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라면 자기 안에서 신화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조지프 캠벨,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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