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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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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치유) 열풍이다. 현재 제목이나 부제에 '치유'가 들어있는 책은 840종이 넘는다고 한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 에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별아 치유의 산행>, <치유하는 책읽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방황해도 괜찮아>, <스님의 주례사>, <엄마의 수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아프니까 청춘이다>, 기타 등등···.*
 
사는 게 피곤하긴 한가 보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적인 질환은 그 어떤 전염병보다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앞으로는 몸과 마음이(특히 마음이) 건강한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정신적 대공황의 시대다. 동시에 치유사의 시대이기도 하고. 

포르투갈의 외무대신이었던 '카르발류'가 떠오른다. 1755년 리스본에 대지진이 닥쳤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었다.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진노라며 회개하라 외쳤다. 다들 그저 기도만 하는 무력한 상황이었다. 이 아비규환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한 대신이 궁정에 도착했으니, 그가 바로 '카르발류'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그는 답했다.

"죽은 자는 묻고 산 자에게는 먹을 것을 줍니다."**

우문현답이로다! 왕은 신학적인 헛소리로 물어왔지만, 그는 당장 해야 할 것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답했다. 그렇게 그는 왕으로부터 전권을 얻어 리스본을 재건한다. 폐허가 된 리스본을 근대적인 도시 계획에 따라 이중 내진 설계를 도입하여 재건축하고, 과학적인 학문을 대학에서 배울 수 있도록 조치하고, 지진의 원인이 신의 분노라는 것에 맞서 지진의 자연과학적 원인을 탐구하도록 독려하고, 근대적인 대중 교육을 도입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당시 유럽 대지진의 참화와는 다르다. 까딱 경쟁에서 패배하면 한없이 핍박받는 삶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는 종류의 참화는 교묘하다. 마음에 병이 나지 않고 어찌 배기겠는가. 대지진의 참화를 딛고 유럽 근대화를 꽃피운 불꽃은 기도나 회개가 아니라 정교분리, 예수회 추방, 노예제 철폐, 세금 조례 단일화, 군대 개혁, 상업 육성과 규제, 왕립 출판사 설립 등의 개혁을 이루어 낸 '인간의 의지'였다. 정신의 공황이라는 이 참화를 딛고 더 건강한 세상을 꽃피우는 불꽃 역시 그저 '치유'일 수는 없을 것이다. 치유는 중요하다. 그러나 잠시 통증을 완화했다고 해서 병이 나은 것은 아니다.

12/07/15

 
* 주간경향, 12-07-11, [줌인]치유가 필요한 사회 ‘힐링 신드롬’
* 경향신문, 12-07-07, 스님들의 베스트셀러 ‘중생 치유’ 
** 시라디, <운명의 날: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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