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영혼은 접어두어라, 도취를 아는 것은 몸이니 본문

명문장, 명구절

영혼은 접어두어라, 도취를 아는 것은 몸이니

모험러

「도원 선사는 제자들이 윤회와 득도에 대한, 선과 악에 대한 헛된 공론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먼저 자신들의 몸으로 하는 좌선의 근면한 수행을 통해 "공부하라"고 충고한다. "몸을 통해서 도를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살과 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몸은 도에 대한 공부로 나아가는 출구이며, 도에 대한 공부의 출구는 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단지 물질이 아니다. 몸도 보편적 생명을 분유하며, 현실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붓다의 본성을 자신 안에 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도원 선사는 깨달음에 의해서 "우주의 십방세계 전체"로 확장되는 "인간의 참된 몸"을 환기시킨다.


니체의 생리학은 선종의 이러한 초월론적 생리학과 놀라울 만큼 가깝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자기Soi"는 자아의 좁은 한계들을 드러내는 이러한 우주적 차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도원 선사에게서도 그렇지 않았듯이, 니체에게서도 각양각색의 정신주의에 맞서는 몸의 복권은 단조로운 환원주의에 이르지 않는다. 자칭 정신의 불멸성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독단주의적인 강경파 유물론자들이 믿고 있듯이 신적인 것에 대한 모든 경험을 부인해야만 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도취를 아는 것은 바로 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개입시키지 말자······. 누군가는 종종 춤추는 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니체는 몸을 더 유연하게 만들고 더 "지성적이게" 만들기 위한 신체 수련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춤은 바로 이러한 신체 수련의 모델이었던 것이다. 무용수는 수동적인 명상에 잠겨 있는 신비주의자보다 더 확실하게 은총에 이를 수 있다. 강도 높은 훈련 덕분에 말이다. 광신자가 자신의 정신을 정화하고, 자신의 정신을 신에 향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억압할 때, 무용수는 몸과 정신의 완전한 합일을 실현한다. 춤은 기생적인 의식이 지니고 있는 강박관념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기 통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Soi)에 이르는 통제를 상징한다.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 사람은 자신들 속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불교 신자가 아니었기에, 우리 안에 붓다의 본성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철학자-입법자가 망치를 들고 형식을 부여해 주어야 하는 가공하지 않은 질료와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완전한 실현, 전적인 자기 현전은 오직 극도로 엄격한 신체적 단련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도원 선사와 생각을 같이 했다.」*


15/11/19


* 야니스 콩스탕티니데스, & 다미앙 막도날드. (2012). 유럽의 붓다, 니체. (강희경, Trans.). 파주: 열린책들. 수정.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Comments